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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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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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 FM 98.1 (07:00~09:00)
■ 진행 : 박성태 앵커
■ 대담 : 전경철 (안녕, 피터팬 작가)

◇ 박성태> 지금부터는 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자폐성 장애 1급. 중증 자폐를 가지고 있는 아들을 홀로 20년 넘게 돌봐온 싱글 대디. 그런데 지난해 4월 갑작스럽게 간암 시한부 판정을 받습니다. 처음에는 치료를 포기했지만 내가 떠나면 아들은. 그래서 관련된 사연이 알려지면서 일단 아들이 있을 곳은 구해졌는데 우리 아들 같은 친구들이 더 편하게 있을 장소를 구하기 위해서 책을 쓰고 재단을 만들기 위해서 노
력하는 분입니다. 안녕 피터팬의 저자, 전경철 작가님을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전경철>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 박성태> 반갑습니다. 일단 사실 실화탐사대 방송을 통해서 처음 작가님을 알게 됐고요. 사실 최근에는 어제 책을 받아서 조금 좀 읽어봤습니다. 살아오신 이야기. 또 아들에 대한 이야기. 또 재단을 만드는 이야기들이 담담하게 쓰여져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책이 앞에 있습니다. 일단 안녕 피터팬인데 피터팬의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된 건가요? 여기서 피터팬은 누군지?
◆ 전경철> 그러니까 제가 이른바 나홀로 아빠가 된 그 해가 2007년인데요. 새삼 처음부터 공부를 다시 해 봤어요, 자폐라는 병에 대해서. 그 자폐의 원인이 뭘까. 지금도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때에도 일단 원인을 밝히려는 많은 연구가 있더라고요. 그러다가 발견한 나라가 피터팬 신드롬이라는 단어를 제가 만나게 됩니다. 그 이전까지는 오티즘. 되게 흔히 지금도 오티즘이라고 표현되는 자폐라는 삭막한 단어를 놓고 공부를 계속하다가 피터팬이라는 동화 속 단어를 만나게 되니까 제 마음이 크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물론 행복한 비유를 했던 연구는 아니고 어른이 되기를 스스로 거부하고 평생 네버랜드에 살기를 원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를 우리는 피터팬이라 부른다.
◇ 박성태> 계속 아이에 머문다는 거죠.
◆ 전경철> 예, 그러니까 마치 그 유명한 연극 대본의 이름이잖아요. 100년 전에 만들어진 그 주인공의 심리와 비슷하다라는 얘기였는데 제 느낌이 헤아려지실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저는 그게 굉장히 뭔가 마음의 위로가 됐어요, 판타지스럽기도 하고. 마치 동화 속 주인공 같다는 제 아들이 끔찍한 자폐 환자가 아니고 그래서 습관처럼 그 공부를, 공부라기보다는 접했던 그 단어를 보고 난 뒤에 이 피터팬 이런 식으로 제 아들을 불러
왔죠. 요즘은 좀 그때보다는 덜 쓰는데 하여간 크던 시절에는 굉장히 그렇게 많이 불렀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글을 제가 책 속에 그러니까 브런치라는 그 작가 사이트에 쓰고 책을 옮겨오고 그랬는데 그쪽에서 방송을 하시는 분이 작가분께서 그 편을 읽고 그대로 따와서 제목을 지었나 봐요. 그래서 안녕, 피터팬이라고.
◇ 박성태> 사실 느낌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제가 책을 초반에 쭉 한 중간 정도까지 쭉 봤는데
◆ 전경철> 그게 지금 내려와서 책 제목까지 이어지게 되는데요. 저는 그냥 같아요. 저는 같은데 우리 말에서 이제 안녕, 피터팬 할 때 안녕의 의미가 여러 가지잖아요. 처음 봤으니까 헬로 하는 의미도 있고.
◇ 박성태> 인사.
◆ 전경철> 잘 있어 하는 굿바이 하는 그 안녕도 있고 그런 여러 가지 뜻이 그 안녕이란 말이 붙으면서 바뀌긴 한 것 같은데 어쨌든 제 눈에 지금도 들어오는 단어는 피터팬이라는 동화 속 단어죠.
◇ 박성태> 제가 이제 느낌이 좀 달랐다고 얘기한 건 처음에 집을 몇 채를 옮기고 강동에 스스로 작가님이 귀곡산장이라고 표현하신 한 양옥 주택 아주 오래된 양옥 주택의 2층으로 이사 갔을 때 저는 어떻게 보면 느낌은 귀곡산장이라고 표현하신 게 세상과는 좀 단절된 내 아이를 꺼리는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부담스러워하는 시선으로부터 나 혼자 온전히 아이를 돌볼 수 있는 공간. 이렇게 봤는데 피터팬이라고 하면 완전히 또 느낌이 다른 것 같아요. 그렇게 보는 아이들을, 우리 작가님이 아이를 보는 시선이 내 아이는 남들이 꺼려하는 사람이 아니야라고 볼 수 있는.
◆ 전경철> 그렇죠.
◇ 박성태> 그런 단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전경철> 실제로 동화 속 피터팬도 네버랜드라는 섬에 자신만의 성을 구축하고 다른 버림받은 많은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거든요. 비슷한 느낌인데 저만 특별한 거는 아니고 자폐 자녀를 키우는 많은 부모들은 특히 도시 생활을 하고 있다면 상당히 눈치 보면서 살아야 해요. 늘 이웃에 폐를 끼치지는 않나, 내 아이들로 인해서 이웃들의 편안한 삶이 방해를 받지는 않나 그러던 중에 참 기묘한 곳을 만나게 된 거죠. 실제로 지어진 지 50년이 넘은 집이에요. 저희 집은 굴뚝도 있어요. 바로 앞집에는 우물도 있고 하여간 전형적인 50년 전 풍경을 가지고 있는데 또 기가 막힌 거는 저녁 7시만 돼도 모든 인적이 끊기는 굉장히 한적한 시장 골목 안에 집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지금껏 아들을 27살이 되도록 겪어야 했던 어떤 이웃들의 눈치 보기라든가.
◇ 박성태> 항의 민원.
◆ 전경철> 뭐 등등으로부터 해방이 된 거죠. 그래서 기꺼이 산장이긴 한데 그 대신 찾아오는 이 하나 없고 제가 누군가와 소통도 하지 않다 보니 그냥 흔히들 하는 표현대로 귀곡산장이다, 이런 말을 제가 자조적으로 좀 붙여서 얘기를 했는데. 남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제게는 무척 친숙한 그런 단어입니다.
◇ 박성태> 저도 그 단어를 보고 약간 숨어 들어간 듯 하면서도 또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또 한편은 연을 또 바깥으로 갖고 싶어 하는 작가님의 그런 마음들이 복합적인 감정들이 좀 느껴진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숨어 들어가려고 했던 거는 그만큼 중증 장애아를 키우기가 어려운.
◆ 전경철> 힘들고.
◇ 박성태> 사회 현실을 표현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 전경철> 그 자체가 육아 혹은 돌봄이라고 말하는 자체가 힘든 거보다 지금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웃들의 시선이 사실은 더 힘들어요. 마치 제가 이 사회에 짐이 되고 있는 것 같은 어떤 그런 느낌. 끊임없이 눈치를 봐야 하고 제가 이 건강한 사회의 평균 점수를 깎아먹고 있지는 않나, 그런 느낌이 사실 더 힘들거든요. 그래서 가끔은 따뜻하게 말을 건네주고 따뜻하게 쳐다봐주는 사람을 보면 정말 하염없이 고마워요. 그런 것들로부터 해방되다 보니 그렇게 자조적으로 느껴지거나 뭐 그랬을지는 모르겠네요. 그런데 어쨌든 그곳에만 있으면 제 아들이나 저에게는 일단은 모든 물체로부터 해방된 에덴동산 같은 곳이다, 이런 생각을 했죠.
◇ 박성태> 사실 20년 넘게 아이를 홀로 키우면서 근데 아이가 커가고 힘이 세지고 책에서 몇 차례 그런 게 나오더라고요. 손을 할퀴기도 하고 그래서 상당히 물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많이 느끼셨다고요.
◆ 전경철> 그러니까 대부분 상상하시고 실제로 겪는 초기의 증상은 그러니까 억울함. 그러니까 자기 삶이 자기 자식의 삶으로 통째로 바뀌어 버렸다. 그런 억울함이 사실 있어요. 처음 시작할 때는 근데.
◇ 박성태> 왜 내게?
◆ 전경철> 왜 내게 이런 일이 벌어졌고 왜 나는 내 삶이 불과 40대에 제가 생각하는 사람 나이 40대는 황금기의 시작이라고 보거든요. 근데 왜 이 시기에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지 못하고 그냥 자식의 삶으로 내 삶을 바꾸고 포기 당해야 하나, 이제 이런 느낌이 있거든요. 근데 그거는 곧 극복이 되더라고요. 제가 해보니까 이거는 우리 아들과 나의 운명이다. 억울해 하지 말자. 더구나 나는 부모다.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논
리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납득이 돼요. 그래서 그렇게 할 수 있는데 실제로 어려운 건 익숙해지지가 않아요, 생활이. 그러니까 왜 안 익숙해지냐 하면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게 아니라 늘 새로운 어려움이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와요.
◇ 박성태> 예를 들면.
◆ 전경철> 조금 전 앵커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어느 날 보니까 이 아이가 저보다 힘이 세졌단 말이죠. 힘이 세져서 이전에는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이제 말은 못하니까 몸으로 대개 표현을 하게 되는데 저를 잡아 끌거나 막 그런 식의 소극적인 행동이었는데 이제는 안 들어주면 눈을 부라리면서 아빠보다 내가 힘이 세다라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래서 조금 더 그 폭력적이거나 돌발 행동적이거나 이런 행동을 한다는 거죠. 그리고 이전에 제가 그 대처해야 했던 어떤 물리적인 어려움이나 이웃들과의 충돌 이런 부분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점점 많아지는. 그러다 보니까 익숙해지지가 않는 거죠.
◇ 박성태> 사실 힘이 더 세졌기 때문에.
◆ 전경철>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억울함은 극복이 됐는데 가장 힘든 걸 두 가지를 꼽는다면 도대체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는 거, 이 생활이. 27년을 해도 익숙해지지가 않더라는 것. 그리고 늘 새로운 숙제가 제게 생기더라는 것, 그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제 몸에 굉장한 피로가 쌓이고 있었다. 그건 나중에 알게 됩니다.
◇ 박성태> 그걸 확인한 게 지난해 4월이었고요.
◆ 전경철> 그렇죠.
◇ 박성태> 진단을 받고 검사를 받아서 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저도 책을 보고 놀란 게 처음에 치료를 받지 않겠다라고 의사가 이건 당연히 왜 그러냐 하면 암의 말기이기 때문에 당연히 치료를 해야 되는데 않겠다고 선언한 건 이미 지쳤기 때문인가요?
◆ 전경철> 그러니까 그 말을 들으니까 그냥 아무런 제가 표정 변화 없이 아, 그렇군요. 저는 치료는 받지 않겠습니다. 다만 제게 남은 시간이 얼마일까요, 그 정도가 궁금합니다라고 말을 했더니 그 국내뿐 아니라 이 세계에서 암 치료에 관한 글로벌한 순위를 다툰다는 담당 교수분께서 젊은 양반이 왜 그러냐. 치료법이 얼마나 많은데. 왜 듣자마자 그런 말을 막 준비된 발언인 것처럼 서슴없이 해 버리니까 묻더라고요. 그전에는 누군가 그런 얘기를 해 온다면, 물어온다면 할 수 있는 답변들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예컨대 자기 몸을 그리고 온전한 몸과 온전한 마음으로 다스리지 못하면서 그저 여명을 늘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런 생각을 평소에도 갖고는 있었어요. 있었는데 뜻밖에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제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게 의사는 뭔가 집요하게 물어볼 태세인데 그 앞에 두고 제가, 실은 제가 27년을. 그때는 26년이죠. 작년 일이니까 26년을 중증 자폐 아들을 키우며 살았는데 많이 힘들었나 봐요. 이제 쉬고 싶어요라고 말을 했어요. 말을 하면서 저도 좀 흠칫했어요. 왜냐하면 상상하지 못했던 제 솔직한 마음이었고 그 정도인 줄은 몰랐어요, 제가.
◇ 박성태> 그건 사실 준비하거나 한 대답이 아니었고. 그냥 튀어나온 대답이었고.
◆ 전경철> 예, 준비된 대답이 아니고 뭔가 의사가 그렇게 진지하게 물어보는데 저도 솔직하게 답해야 된다라는 생각을 하고 저도 모르게 제 마음을 꺼낸 거죠. 그런데 또 그 교수분도 참 독특한 분이신 게 으레 다른 환자에게는 여러 가지 얘기를 들었겠죠. 저 같은 사람이 지금도 지금은 담당 교수가 바뀌셨는데 가끔 저 같은 사람이 있대요, 많지는 않대요, 솔직히. 대부분의 분들이 여명을 조금만 늘려주세요 아니면 고통 없게 해주세요 등등의 얘기를 하는 게 거의 99%인데 그러니까 가끔씩 저처럼 치료 안 받을 테니 그저 남은 시간이나 알고 싶다 이런 류의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거죠. 그런데 그분도 그러니까 저 같은 얘기를 처음 들어서인지는 모르겠는데 한참 저를 쳐다만 보더니 지금도 잊혀지지 않은데 그러세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그래요. 그게 사실은 굉장히 복잡한 마음의 표현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는데 그러고 났는데 마음이 참 개운하더라고요.
◇ 박성태> 사실 지치신 건 뭐 그전에 또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계셨고 그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었고.
◆ 전경철> 물론 그것도 큰 배경이 됐죠.
◇ 박성태> 아들도 사실 또. 27년간 중증 장애를 키웠고 그래서 사실은 치료를 안 받겠다고 했다가 8월에 한 번 쓰러지신 다음에 아들은 사실 시설에 돌볼 사람이 없어서 보내게 됐다가 다시 나왔다고 그러더라고요. 아들은 사실 그 시설에서 못 지내게 됐다고 그러더라고요. 그 얘기를 좀 구체적으로 치면 왜 그렇습니까, 그건?
◆ 전경철> 그러니까 사실 의사한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뭐가 있었냐. 설마 대한민국에 1000여 곳에 달하는 그 중증 장애인 거주시설이 있다는 데 물론 엄격히 따지고 들어가고 분야를 따지면 1000개까지는 아니고 수백 개 정도가 있어요. 그런데 어쨌든 한 곳 당 평균적으로 50명 이 정도는 되거든요. 그러면 그 숫자가 꽤 있고 저도 나름대로 공부를 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중증 자폐인의 수가 얼마인지도 어림하고 있
는 부분이 있고 그래서 설마 우리 아들이 그 잠잘 잠자리 하나 없겠느냐, 이런 생각을 했던 거죠.
◇ 박성태> 내가 없어도 아이를 돌봐줄 제대로 된 시설이 어딘가에 있을 거야.
◆ 전경철> 그때 말하기를 그래요. 아무것도 안 한다면 글쎄, 한 6개월 이런 얘기를 들었거든요, 처음에 얘기할 때. 그래서.
◇ 박성태> 여명이 그렇다는 말씀이시죠?
◆ 전경철> 네, 여명이, 여명이 그 정도 된다. 그건 정확하게 나중에 진단서를 보니까 기대 여명이라는 표현을 쓰던데 그래서 속으로 생각하기에 6개월이면 충분하지 않냐라고 생각을 했던 건데 막상 그 일을 시작하고 그게 엄청난 착각이었고 제 판단 착오였다는 걸 알게 돼요. 말씀드린 그 모든 곳에 전부 연락을 하고 빠짐없이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답변을 주는 것 같으면 바로 찾아가서 그 상담을 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접수가 안 됩
니다라고 하면 그럼 대기라도 시켜주세요. 뭐 이런 일들을 했는데 안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말씀하신 것처럼 6개월은 아직 안 됐는데 4월이 됐고 8월이었으니까 4개월 만이죠. 그런데 치료를 안 하는 걸 포함해서 이전과 똑같은 생활을 했어요, 저는. 여전히 술도 마셨고. 결정적인 게 술이죠. 하여간 그렇게 살았는데 그러다 보니까 그랬는지 신호가 왔는데 나중에 그 의사분도 그러더라고요. 하루만 늦었어도 이 세상 사람 아니었다라
는 얘기를 해요. 하여간 몸속에 피가 터지고 그래서 아래 위로 피를 쏟고 이러는 증상인데 놀랍더라고요, 우리나라 의료 수준. 그 정맥 하나를 일일이 다 손으로 꼬매 가지고 살려 놓더라고요, 저를. 그때 입장을 바꿔서 의사 교수들한테 얘기했죠. 치료받겠다고. 왜냐하면 도저히 이건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 박성태> 그러면 그런 얘기군요. 처음에는 내가 가더라도 아들을 돌봐줄 시설이 있을 거야.
◆ 전경철> 네, 라는 믿음 때문이었는데.
◇ 박성태> 왜 그러냐면 전국에 1000여 곳이 있으니.
◆ 전경철> 그렇죠.
◇ 박성태> 그런데 쓰러졌을 때 경험해 보니 아들을 제대로 돌봐줄 시설은 없구나.
◆ 전경철> 또 드라마틱 했던 게 그렇게 찾아도 없었는데 병원에 입원해 있는 와중에 강원도의 모처에서 연락이 왔어요, 가능하다고. 그래서 거의 마지막 날이죠. 이번 기간 동안에 마지막 날에 떠나게 됐어요, 저는 없는데. 그래서 이제 그것까지를 접하고 났는데 집에 돌아왔는데 아들은 떠나고 없는데 바로 그 새벽에. 그러니까 거기 들어간 지 4시간 만에 그냥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쫓겨난 건데, 도저히 못하겠다.
◇ 박성태> 마음을 둘 수가 없다라는 거군요?
◆ 전경철> 네.
◇ 박성태> 너무 큰 힘이 센 중증 장애아는.
◆ 전경철> 이 정도인지 몰랐다. 그러니까 이 폭력성이나 돌발 행동의 정도가 심해서 우리는 못한다, 데려가셔라, 귀가시킬 수밖에 없다.
◇ 박성태> 시간이 많지는 않아서, 저희가 방송 편성 시간이 있어서 제가 좀 죄송하지만 끊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사실 그 뒤에 그런 시설을 만들기 위해서 내가 직접 만들겠다 하기 위해서 피터팬 재단을 세우고 네버랜드라는 이름의 그런 마을을 짓고 싶어 하시는 거죠?
◆ 전경철> 이제 그 꿈을 가지게 된 거는 그 과정은 아니고요. 나중에 제가 사실 그런 과정을 쭉 겪고 시설로부터 쫓겨나는 생활도 반복이 돼요. 그래서 끝내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실패를 하다가 제 사연을 호소를 하고 그 호소를 받아들이는 그 방송사에서 그 제가 호소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을 내보내는 이런 일이 있었는데 참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그러니까 엄청난 딱 3일 동안이었는데 지금도 못 잊어요. 3월 12일 날 방송이 되고
17일, 18일, 19일 3일간에 걸쳐 일어난 놀라운 반응이었는데 엄청난 격려와 실제로 숫자로 확인되는 신기록이라고 말들을 하던데 그런 후원의 물결과 이런 걸 겪게 되면서 내가 그렇게 원망했던 세상과 사람들이 이렇지 않구나. 그전에는 그저 말로만 들었지만 정말 놀라울 정도로 따뜻하고 희망이 넘치는구나. 그때 기록적인 후원 금액을 보면서 이건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금액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래서 어떻게든 내 아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이어서 할 일은 저뿐 아니라 저만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저랑 똑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고 지금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어떤 생활 공동체 마을을 짓고 싶다.
◇ 박성태> 그게 피터팬의 네버랜드고요.
◆ 전경철> 그거를 피터팬의 네버랜드라고 이름을 지었고 그 일을 하려면 알아보니 재단이 필요하다, 비영리 사회복지법인이. 그래서 거기를 피터팬 재단이라고 이름을 짓고 뜻밖에도 그런 이름을 가진 곳이 없어서 가능하더라고요. 그 네이밍이.
◇ 박성태> 저희가 방송 시간, 본방송 시간은 다 돼서. 유튜브로 조금만 더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라디오는 여기까지 듣고 잠시 뒤에 조금만 더 듣도록 하겠습니다. 전경철 님 만나고 계신데요. 일단 본방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