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의 한판승부

표준FM 월-금 18:00-19:30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반드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

11/18(금) 이태원 출동 소방관 "끝내 못살린 희생자들 얼굴 떠올라 고통"
2022.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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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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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 FM 98.1 (18:00~19:30)
■ 진행 : 박재홍 아나운서
■ 패널 : 진중권 작가, 김성회 소장
■ 대담 : 권영준 중부소방서 소방대원



◇ 박재홍>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3주가 됐습니다. 저희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는 이태원의 목소리 시리즈로 당시 현장에 계셨던 분들의 목소리를 전해 드리고 있는데요. 오늘은 그 세 번째 이야기. 참사 현장 처음부터 끝까지 누구보다도 힘을 쓰셨던 소방대원과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당시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하셨던 권영준 중부소방서 소방대원입니다. 대원님 나와계시죠?

◆ 권영준> 안녕하세요.

◇ 박재홍> 참사가 꽤 늦은 시간에 났습니다. 용산소방대 첫 출동이 밤 10시 15분이었다고 하는데 서울 중부소방서에서는 대원님은 몇 시쯤 나가셨던 겁니까?

◆ 권영준> 제 기억으로는 10시 20분경에 저희가 출동에 나서서 차량도 정체되고 인파도 너무 많아서 10시 45분이나 50분경에 현장 도착했습니다.

◇ 박재홍> 25분 걸려서 현장에 한 40분쯤 도착했다. 우리 소방관님도 현장에 가셨을 때 보셨던 골목 상황이 어땠나요?

◆ 권영준> 길에 올라가서 보니까 그쪽에서는 요구조자를 이쪽으로 뺄 수가 없어서 다시 우회해서 골목을 나와서 다시 옆 골목으로 우회해서 뒤쪽으로 갔더니 벌써 한 열 분 정도가 심폐소생술을 받고 계시더라고요. 그런데 그 심폐소생술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일반 시민분들이었어요. 그래서 우리 대원들 정신없이 흩어져서 다 맡아서 한 명씩 맡아서 심폐소생술 하는데 우리 후배 하나는 심정지 추정 환자인 분들이 겹겹이 이렇게 돼 있었잖아요. 그래서 그쪽에 가서 꺼내는 걸 돕고 여기서 이 좁은 골목에서 계속 그러신 분들이 의식 없으신 분들이 나오는데 여기서만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겠다 싶어서 5분 이상 심폐소생술을 했는데도 소생이 안 되시는 분들은 팀원들한테 시민분들한테 도움을 요청해서 대로변에 눕혀 놓고 거기서 주변 분들한테 또 심폐소생 해 달라. 저는 또 뛰어 올라가야 되니까. 그런데 그 상황을 그렇게 한 10번 이상, 10번, 15번, 20번을 하고 있는데.

◇ 박재홍> 왔다 갔다 왔다 갔다 100m 되는 거리를. 당시 대응에 대해서 또 여론에서 좀 많이 질타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은주 서울 용산소방서 구급팀장님의 경우는 저희는 단 한 순간도 걷지 않았다라는 말씀을 해서 당시 얼마나 열심히 하셨는가를 알게 됐는데 소방관님도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뛰셨던 것 같아요.

◆ 권영준> 진짜 그때는 힘든 줄도 모르고 했고 또 정신없이 또 그러다가 중간중간에 문득문득 든 생각은 약간 무서움도 찾아왔고 어떤 무서움이냐 하면 안전하다는 서울 한복판에서 이렇게 많으신 분들이 심정지 추정이 돼서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는 거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계속 심폐소생술을 하고 대로변에 모시고 모시고 하는데도 계속 끊임없이 나올 때. 그때 그게 좀 무서웠었죠, 마음속으로. 그런데 정신없이 일단 땀에 젖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했었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소방관 동료들의 액션캠이 증거가 될 것이다. 정말 한순간도 걷지 않았다는 말씀으로 얼마나 치열하게 하셨는지를 증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열심히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희생자들이 또 너무 많이 나와서 또 아쉬움이 많이 남기도 하실 것이고 또 살리고자 하셨는데 못 살리신 분도 있으실 텐데 혹시 기억나는 장면 어떤 게 있으실까요?

◆ 권영준> 지금 한 보름 정도가 지났지 않습니까?

◇ 박재홍> 그렇죠.

◆ 권영준> 그런데 이제 그 참사 있고 나서 한 일주일 안쪽에는 이런 생각이 안 들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처음에 도착했을 때 제가 심폐소생술 했던 분들 얼굴이라든가 전체적인 이미지 같은 게 간혹 떠오르더라고요. 그게 제일 마음 아프죠.

◇ 박재홍> 그럼 처음 심폐소생술 했던 분들은 끝내 숨을 다시 회복하지는 못하셨던.

◆ 권영준> 제가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이제 대로변으로 모셨던 분 중에서 한 분 정도만 깨어나셨다, 심장이 돌아오셨다 그런 얘기 들었고 대부분이 만약에 압사로 해서 심정지가 되셨다고 치면 5분이 골든타임인데 벌써 시간이 흘렀고 저희가 도착했을 때도 이거 큰일 났다, 무조건 살려야 된다 하는 생각으로 미치도록 가슴 압박하고 그랬죠.

◇ 박재홍>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말씀을 드리고요. 당시 또 우리 대원님 말고도 현장에 가셨던 분들 중에서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분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어떤 말씀들을 하시나요, 현장에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 권영준> 제가 몇 번 인터뷰를 반복하다 보니까 제가 힘들더라고요. 왜냐하면 저도 저 스스로도 이미 기억을 계속.

◇ 박재홍> 돌리는 것 자체가.

◆ 권영준> 다시 또 떠올려야 되니까. 그리고 이제 우리 대원들 같은 경우는 평상시에는 화재나 아니면 사건사고나 출동 받다 와서 그거에 대해서 한두 번씩은 우리 소방서 내에서 얘기하거든요. 우리 현장 활동이 어땠다, 잘했다,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얘기를 전혀 안 하고 저 스스로도 다시 꺼내기 싫고 마음속에 묻어두는 그런 거죠.

◇ 박재홍> 아직 우리 또 소방대원들 사이에서도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이는 그러한 워낙 큰 아픔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 권영준> 맞습니다.

◇ 박재홍>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에 대한 수사, 소환조사 이 부분도 현장 계셨던 분들은 굉장히 분노하고 계신데 대원님 어떤 판단 하고 계십니까? 현직 소방관들의 반응까지 함께 말씀 주시면.

◆ 권영준> 용산소방서장님도 어떻게 보면 최고 지휘관이지 않습니까? 지휘관인데도 불구하고 그날 자택에 있거나 소방서 내에 계신 것이 아니라 현장에 미리 3시간 전에 가서 그렇게 현장 활동에 중점을 두고 그러신 분은 여태까지 지휘관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거든요. 그런데 이제 용산소방서장님뿐 아니라 그 밑의 지휘팀장님 또 저희 출동했던 대원들의 그 액션캠이라든가 그런 활동일지 같은 거 그런 것들을 모든 것을 다 압수수색해 가서 그걸 문제 삼으려고 하는 모습인 것 같아서. 저희로서는 국민들한테 생명을 살리지 못한 그런 책임감 그런 것 때문에 힘든데 수사기관에서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서 사기 저하도 많이 돼 있고.

◇ 박재홍> 사기 저하.

◆ 권영준> 그런 상태입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이제 마칠 시간이 돼서요. 이태원 참사, 10. 29 참사 같은 일이 절대 다시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 모든 국민들의 공감대이실 것 같아요. 전문가로서 앞으로 어떤 게 좀 제도적으로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 권영준> 일단은 사후에 책임을 얘기하는데 사후에 얘기하는 건 여태까지 많은 사건사고가 수없이 반복했던 거 아닙니까, 수십 년간. 그때마다 지나고 나서 예방이 중요하다고 했지 않습니까?

◇ 박재홍> 그렇죠.

◆ 권영준> 그래서 예방이 가장 중요한 것 같고 그리고 이런 사건사고가 있을 때마다 그 현장에 출동해서 정말 열심히 일했던 우리 소방관뿐만 아니라 경찰관분들도 그런 하위직 공무원들한테 책임을 전가하고 고위직 분들은 나중에는 빠지는 그런 게 아니라 좀 책임 있는 한마디라도 듣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그리고 미리 그걸 예견을 해서 질서 유지라든가 인원 통제라든가 이렇게 좀 했으면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을. 예방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박재홍> 예방을 위한 제도적 시스템이 좀 더 보완돼야 될 것 같다는 말씀.

◆ 권영준> 맞습니다.

◇ 박재홍>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권영준> 들어가십시오.

◇ 박재홍> 한판승부에서 이태원의 목소리 세 번째 시간으로 들어봤습니다. 권영준 중부소방서 소방대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