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때때로 '많은 것'에 절망하면서도
'어떤 것'에는 희망을 걸면서 살아간다.
희망은 분명 삶을 지탱한다.
감히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게 하는 힘이야말로
희망의 원형질이다.
다만 앞날에 대한 기대와 설렘만이 희망을 구성하는 재료는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희망은 때론 과거에서 온다. 내 과거가 헛되지 않았다는 믿음이
마음 한구석에 꿈틀거릴 때 희망의 싹이 자라기 시작한다.
끄트머리, 라는 단어에는 끝이 되는 부분이라는 뜻 말고도 일의 실마리, 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가끔은 과거의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생각과 감정의 속살을 직시하고
자신만의 답을 찾거나, 답이 없음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삶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다.
어떤 희망은, 양지와 시작과 미래가 아니라 음지와 끝과 과거에서 생겨난다.
이런 내 생각은 다큐멘터리 채널에서 어느 산악인의 인터뷰를 본 후, 더욱 굳어졌다.
평생 높은 산을 오르고 험난한 봉우리에 도전하면서 마치 산처럼 우뚝한 사람이 된 듯한
그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야간 등정에 관해 이야기했다.
“에베레스트를 등정할 때 자정부터 오르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낮에 기온이 올라서 눈이 한꺼번에 녹아내리거나 하면 눈사태를 겪을 확률이 밤보다
높아지거든요. 거봉을 오르기 위해 밝은 대낮보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밤에 더 많이 걸었던 것 같아요.
매번 어둠을 건너갔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두운 터널 속에서 자기만의 빛을 발견하고 그것을 향해 걸어가는 일인지 모른다.
빛을 발견하려면 빛만 응시해선 안 되지 않나 싶다. 때론 어둠 속을 걸으면서 손끝으로 어둠을
매만져야 한다. 어둠을 가로지를 때 허공으로 흩어지는 어둠의 파편들을 한데 끌어모아,
현미경 들여다보듯 어둠의 성질을 치밀하게 알아내야 한다. 그런 뒤에야 우린 빛으로 향하는
출구를 발견할 수 있다. 어둠을 직시할 때만 우린 빛을 움켜쥘 수 있다.
*이기주의 <한때 소중했던 것들>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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