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501금 그대가 있는 그곳에서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대아침
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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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를 보라. 오롯이 나를 위해 준비된 것들!
다림질한 것처럼 판판한 면 시트, 무색무취가 주는 편안함. 내가 깃들면 
오롯이 내 향과 색을 맘껏 피울 수 있을 것 같은, 푹신한 베개와 쿠션들,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다양한 크기의 조명기구, 소파와 테이블, 커다란 책상, 
콘솔, 미니 화장대와 붙박이 옷장, 벽걸이 텔레비전, 숨어 있는 정숙한 냉장고, 
도심 속 비밀 공간에 들어온 느낌이다.

나는 청결하고 안락한 방에서 일체의 강박이나 책임, 죄책감에서 벗어나
공간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받는다.
청소를 염두에 두지 않고 어지를 수 있으며, 필요한 물건을 꺼내
책상 위에 마구 늘어놓아도 좋다. 바지를 벗어 소파 위에 툭 던지고,
샤워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과자를 먹을 수 있다.
신발을 끌며 방 안을 거닐 수 있고, 아무데나 신발을 휙 팽개쳐 벗어버릴 수도 있다.
옷장에서 샤워 가운을 꺼내 꼭 남의 깨끗한 옷을 몰래 꺼내 입는 기분이지만
영화 속 주인공처럼 걸쳐 입고, 우아하게 텔레비전을 볼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일상에서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나는 접시에 음식을 담으면서도
설거지를 연상하고, 대단히 깨끗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치울 사람이 어차피 나이기 때문에, 거실에 앉아 빵을 먹으면서도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것을 신경쓰며, 욕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보고 한숨짓는 사람이다.

집과 호텔의 다른 지점이 여기다. 호텔은 어느 날 돌연 '익명성'을 선언하고 자유롭게 독립한 집과 같다.
대부분의 소유물이 그러하듯 집이란 익명성에서 벗어날 수 없고, 소유주의 책임 아래 놓여 있는 공간이다.
반면 호텔은 며칠 동안 허용된 '남의 집', 맘껏 사용해도 무방한 남의 집인 것이다.
내 것이 아니면서,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온전히 내 것인 사물들.
이곳에 머무는 순간만큼은 맘껏 사용하고, 미련 없이 떠나면 된다.
여행이 주는 흥분과 미묘한 긴장, 피로를 이곳에 풀어놓고 노곤해질 준비를 한다. 

*박연준의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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