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1003금 죽었던 시간이 기지개를 켜며 되살아나는 시간
그대아침
2025.10.03
조회 78
모래시계를 뒤집는다. 방금 죽었던 시간이 기지개를 켜며 되살아난다. 
유리관 안으로 붉은 사막이 흘러내린다. 반짝이는 모래알이 금세 사구 하나 만들어낸다.
책상 위로 등 굽은 낙타 몇 마리 걸어 나온다.
마주 붙은 물방울 모양의 투명한 관을 세 개의 원목기둥이 받치고 있다. 
마치 아누비스 신전 같다. 그 안에서 시간 측정을 담당하는 모래 알갱이들은 
자못 결연한 표정이다. 한동안 식탁에 올려놓고 홍차를 우릴 때 이용하다 
서재로 옮겨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책을 읽다지루해질 때면 빗소리처럼 
사르락사르락 모래 흘러내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 좋았다.

모래시계 속엔 두 종류의 시간이 살고 있다.
하나는 잊힌 과거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미래이다.
위쪽에 있던 미래는 현재라는 구멍을 통과하는 순간 과거가 되어버리고 만다.
이대로 영원히 끝나버릴 것 같지만 뒤집으면 죽은 모래들이 부활한다.
시간은 단절되고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것 같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우주의 어느 지점에선
과거는 현재가 될 수 있고 현재 또한 과거로 바뀔 수 있을지도.

인디언들은 풀매듭에 시간을 묶어 놓았다.
자신들의 소중했던 추억을 보관해둔 채 언제든 다시 풀어볼 수 있게.
프랑스 사람들은 온종일 탈 수 있는 양초를 만들어 세 등분 해 검은 선을 그었다.
첫 눈금이 탈 때까지 일하고 두 번째까지는 휴식과 여가를 즐기다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이면 또 다른 양초를 준비하면서 인디언들과 프랑스 사람들은
필요하면 언제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죽은 시간을 살리고 싶은 이가 어디 나뿐이랴. 엄마도, 언니도 다 그럴 것이다.
모래시계를 뒤집으면 젊은 엄마가 그 많은 농사를 척척 해내고,
내일이면 교단에 설 언니는 봄 치마처럼 부풀어 있고,
개구쟁이 동생이 고샅길을 돌아 집으로 뛰어온다.
내가 쓴 소설의 주인공은 샤갈의 그림이 되어 무지개를 타고 황금빛 언덕을 넘어,
기와지붕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동네 위를 날아간다. 감았던 눈을 뜬다.
책상 위 낙타들이 내 안으로 걸어온다. 사구 같은 몸에서 사르락사르락
붉은 모래가 흘러내린다.

*이상수 수필집 <라그랑주점>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