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를 뒤집는다. 방금 죽었던 시간이 기지개를 켜며 되살아난다.
유리관 안으로 붉은 사막이 흘러내린다. 반짝이는 모래알이 금세 사구 하나 만들어낸다.
책상 위로 등 굽은 낙타 몇 마리 걸어 나온다.
마주 붙은 물방울 모양의 투명한 관을 세 개의 원목기둥이 받치고 있다.
마치 아누비스 신전 같다. 그 안에서 시간 측정을 담당하는 모래 알갱이들은
자못 결연한 표정이다. 한동안 식탁에 올려놓고 홍차를 우릴 때 이용하다
서재로 옮겨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책을 읽다지루해질 때면 빗소리처럼
사르락사르락 모래 흘러내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 좋았다.
모래시계 속엔 두 종류의 시간이 살고 있다.
하나는 잊힌 과거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미래이다.
위쪽에 있던 미래는 현재라는 구멍을 통과하는 순간 과거가 되어버리고 만다.
이대로 영원히 끝나버릴 것 같지만 뒤집으면 죽은 모래들이 부활한다.
시간은 단절되고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것 같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우주의 어느 지점에선
과거는 현재가 될 수 있고 현재 또한 과거로 바뀔 수 있을지도.
인디언들은 풀매듭에 시간을 묶어 놓았다.
자신들의 소중했던 추억을 보관해둔 채 언제든 다시 풀어볼 수 있게.
프랑스 사람들은 온종일 탈 수 있는 양초를 만들어 세 등분 해 검은 선을 그었다.
첫 눈금이 탈 때까지 일하고 두 번째까지는 휴식과 여가를 즐기다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이면 또 다른 양초를 준비하면서 인디언들과 프랑스 사람들은
필요하면 언제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죽은 시간을 살리고 싶은 이가 어디 나뿐이랴. 엄마도, 언니도 다 그럴 것이다.
모래시계를 뒤집으면 젊은 엄마가 그 많은 농사를 척척 해내고,
내일이면 교단에 설 언니는 봄 치마처럼 부풀어 있고,
개구쟁이 동생이 고샅길을 돌아 집으로 뛰어온다.
내가 쓴 소설의 주인공은 샤갈의 그림이 되어 무지개를 타고 황금빛 언덕을 넘어,
기와지붕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동네 위를 날아간다. 감았던 눈을 뜬다.
책상 위 낙타들이 내 안으로 걸어온다. 사구 같은 몸에서 사르락사르락
붉은 모래가 흘러내린다.
*이상수 수필집 <라그랑주점>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