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지갑 속에 넣어 다니다 생각날 때면 꺼내보곤 하는 사진이 있다.
풋풋했던 시절의 엄마 아빠 사진이다. 지금도 이 사진이 놓인 책상 앞에서,
가끔씩 들려주신 그때의 이야기를 조금씩 떠올려본다.
회사 동료였던 엄마 아빠는 집 방향이 같아 퇴근길을 함께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저 같은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 내려서 내일 보자는 인사를 나누다가,
다음에는 다른 버스로 갈아타고 조금 더 가야했던 엄마를 아빠가 함께 기다려주다가,
그 버스를 타고 집 앞 정류장까지 가다가, 나중에는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고,
지금은 한 집에서 28년째 같이 살고 계신다.
출근을 함께하던 어느 날, 버스가 고속터미널 정류장에 멈춰섰을 때
둘은 얼음이 되었다고 한다. 버스에 올라타는 많은 사람들 중 익숙한 얼굴의 한 사람,
바로 회사 부장님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부장님께 딱 걸린 그날 이후,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걸 깨달은 둘은 공개 연애를 시작했고 그 덕분에
함께 회사를 다니던 시절의 이 달콤한 사진을 앨범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솜사탕을 나누어 문 다정한 얼굴에서 나는 싱그러운 풀 냄새에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지만 두 분 모두 어린 나이에 타지에서 생활하며
마음고생하셨을 생각을 하면 금세 아릿해진다.
엄마를 데려다주고 집에 가는 길에 차비가 모자라 한참을 걸어야 했던 아빠와,
토요일마다 파주 고향집에 들러 편찮으신 외할아버지의 곁을 지켰던 엄마.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왔을 엄마를 걱정하며 마중을 나가 함께 거닐던
일요일 오후의 광화문 거리와 봉천동과 논현동을 오가는 출퇴근길이 데이트의 전부.
두 사람은 여름이 오면 마주잡은 두 손에 손수건을 접어 넣고 걸었고,
겨울이 오면 아빠의 외투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걸었다고 한다.
스물셋, 스물여섯.
지금의 나보다 어린 두 사람이 서로에게 포근한 솜사탕이었을 시절을 떠올리며,
그 인연으로 세상에 태어나 사랑 가득한 가정에서 자랄 수 있게 해주신 두 분께
부모님의 딸로 태어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산문집 <나의 아름다운 연인들-엄마, 아빠 그땐 어땠어?>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