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이나 대학로, 신촌처럼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번화가에 있던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란 카페를 기억하는가. 기억이 난다면 내 또래라 반가운 마음을 전한다.
갑자기 카페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우연히
샤갈의 초창기 작품을 감상하고 검색하다가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까지 소환되었기 때문이다.
샤갈의 <나와 마을>은 김춘수 시인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시에 영감을 주었으며,
문제의 카페는 김춘수 시인의 시에서 제목을 따온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해 본다.
이런 이유로 샤갈의 <나와 마을>은 Y2K 감성 너머로, 아련한 추억으로 연결된다.
커피 맛을 잘 몰랐던 나는 우산 꽂힌 파르페를 먹으며 오늘과 내일의 낭만을 끄적거렸다.
간판에는 커피의 명가라고 쓰여 있지만 진한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는 원두커피는 아니었다.
사실 이곳은 커피의 명가라기보다는 소개팅의 명가였다.
내 소개팅보다 남의 소개팅 구경하며 노닥거리던 나이에,
샤갈은 이미 자신의 길을 걷고 있었고, 운명의 여인과 사랑에 빠져 있었다.
다채롭고 환상적인 색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샤갈의 작품을 들여다보니,
뚜렷한 목표도, 열정도, 패기도 없었던 나의 무채색 시간이 보인다.
내 커리어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을지 모르는 아나운서 시절마저 무심하게 흘려보낸 나날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젊음의 어떤 시간도 헛된 것은 없었다. 무채색이 겹겹이 쌓인 배경 위에
나는 헛발질 같은 선들을 반복적으로 그리기도 했고, 정성껏 그렸던 얼굴을 지워 내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꿈을 그려 넣다 보니, 어느새 나는 꿈꾸는 사람이 되었다.
벨라에 대한 샤갈의 사랑만큼 확신에 찬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은 막연하다. 나이를 먹는다고, 배움이 쌓인다고, 방황을 계속한대도,
그 막연함이 해소되지는 않으며 때로는 더 막막해지기도 한다. 지금껏 살아보니 그랬다.
누구나 이런 상황을 피해 갈 수 없다는 게 유일한 위로가 될 뿐이다.
이 뿌연 세상 속에서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저마다의 꿈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꿈이 당신을 어디론가 데려다줄 것이라는 믿음.
길을 잃고 헤매는 지금 이 순간이 당신을 내일로 이끌 것이라는 그 믿음으로 오늘도 꿈을 꾼다.
*박소현의 <창문 너머 예술>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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