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들이 수레를 끌고 간다.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 실린 수레의 무게에 소들이 신음한다.
수레 속 물목은 저마다 다르지만 짐의 부피는 비슷해 보인다.
저마다의 짐을 싣고 저마다의 생각에 빠진 소들이
저마다의 보폭으로 꾸역꾸역 걸어간다.
앞에 가는 소가 허연 김을 내뿜는다. 뒤따르는 소도 비척거린다.
왜 하필 내 수레에 그게 실렸을까. 그것만 아니면 수월할 텐데.
왜 나한테만 세상이 불공평할까.
내 짐이 제일 무거운 것 같아. 음메 음메 아우성들을 친다.
어떤 소는 울퉁불퉁한 길을, 어떤 소는 삐걱이는 수레를,
어떤 소는 무거운 짐짝을 탓하느라 세상 어디에도 웃는 소는 없다.
수레는 낡고 길은 험하고 날은 저물고 쉴 곳은 멀다.
소들이 지나간 길 위에 수레바퀴 자국이 남는다.
바퀴 자국은 잠시 선명하게 보이다가 다음 수레에 이내 지워져 버린다.
소도 짐도 기억되지 않고 그렇게 다져진 길들만 모퉁이를 돌아 아득하게 이어진다.
흐름만 있고 물방울은 없는 강물처럼 개개의 사소함은
역사의 도저함에 묻혀버리지만
그 총체적 사소함의 힘으로 세상은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간다.
살다 보면 알게 된다.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된다는 것을.
눈물과 한숨과 좌절과 고통의 엔트로피가 다음 걸음을 위한
연료이고 동력일 수 있다는 것을.
*최민자의 <사이에 대하여>에서 따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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