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늘 졸업식에 오지 못했다. 운동회에도 입학식에도 참관일에도
엄마는 바깥에서 가난과 싸우느라 내 생각만 하면서 그날을 보냈다.
나는 그게 아무렇지도 않았었는데 엄마는 가슴을 쥐고 미안해했다.
그런데 이런 슬픔은 꼭 대물림되는 법, 동생 졸업식에는 어김없이 내가 갔다.
두부처럼 여린 마음이 파헤쳐질까봐 나는 늘 한껏 밝게 찾아갔지만
언제나 가슴 한편 깊은 구석엔 '형이 와서 미안해'라는 마음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정작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일인데
나는 그저 엄마가 아프지 않길 바랐었는데 덜 지치고 덜 슬프길 바랐었는데
특별한 날마다 엄마는 작은 리본을 묶어 마음의 끈을 나의 약지에 걸어두고서
'오뚜기카레 데워 먹어' 같은 쪽지를 소반 위에 정하게 적어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싸늘한 날씨의 졸업식.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한 번만 엄마가 졸업식에 오면 어떨까. 같이 사진을 찍고 손을 쥐고
꽃다발을 안은 채 교문 밖으로 나가는 건 어떤 기분일까.
졸업식 행사가 서서히 마무리되고 있었다. 바로 그때 한 여자가 복도를 걸어왔다.
사람들이 흘끗대며 여자를 봤는데 여자가 들고 있는 게 좀 이상해서였다.
오로지 안개꽃, 안개꽃, 안개꽃, 안개꽃뿐인 꽃다발. 여자의 꽃다발엔 안개꽃만 있었다.
아주 희고 작은 꽃으로 가득한 다발, 여자는 그걸 들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때의 백색, 차분한 마음, 내 둥근 눈동자, 평생 꽃다발을 받아본 적 없던 아이의 심장.
여자는 안개를 내 손에 건네주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 이 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 중에서 네가 가장 많은 수의 꽃송이를 받길 바랐어.
한번은 이런 걸 나도 너에게 해주고 싶어서, 그래서 이렇게 안개꽃만 한가득 담아.”
눈앞이 안개낀 듯 뿌예졌고 나는 꽃송이와 꽃송이 속에 파묻혀버렸다.
볼과 눈썹에 안개꽃이 빼곡히 닿았다. 그날 우리는 사진기를 깜빡해버렸다.
그 대신 넓은 운동장 앞에서 해진 코트를 입고 오래 끌어안았다.
사랑을 졸업할 수 있을 때까지.
*고명재의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에서 따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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