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423수 언젠가 돌아볼 오늘이 되기를 기대하며 한 걸음 힘차게 내딛기!
그대아침
2025.04.23
조회 96
바닷가 마을에 일주일가량 머무는 동안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도 하지 않은 채로 바다를 보러 나갔다.
대문을 열고 돌담이 쌓인 짧은 골목 하나만 나오면 바다가 펼쳐졌다.
바다를 향하는 골목길을 걸을 때마다 늘 새롭고 설레었다. 
하늘과 바다는 매번 다양한 얼굴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커다란 구름이 바다의 지붕인 양 낮게 깔리면
그보다 높은 곳의 햇빛이 구름 빈 틈 사이로 빗금처럼 수면 위를 내리쬔다.
빛줄기를 받은 수면이 반짝반짝 빛나는데, 아주 먼 곳의 풍경인데도 선명하게 눈부시다.
그 광경을 열심히 사진에 담다 보면 비몽사몽 했던 정신은 금세 개운해진다.
고개를 잠시 숙였다가 다시 바라보면 빗금으로 내려오던 빛의 부분은
더 넓어지고 구름의 색감도 달라져 또 사진을 찍는다.

한참을 풍경에 감탄하다가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어 바다를 등지고 골목을 향해 걷는데,
뒤를 돌아보면 또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럼 난 그걸 못 참고 다시 바다 쪽으로 달려가서 구경하고 사진에 담는다.
다시 골목으로 걸어가다가 뒤 돌아보면 또 달려가고, 돌아보고 달려가고….
그것을 여러 번 반복한다. 뒤를 돌아보면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두고 가는 것이 아쉬울 만큼 아름다운데다,
그것에서 멀어지고 싶은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로 돌아서야만 하는 시간은 온다.
가야 할 새로운 길들이 있으니까. 기어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걷는다.

돌아보면 안돼. 바다 풍경 하나 등지는 것도 쉽지 않은데
아름다운 시절을 뒤로 보내버리는 건 큰 힘이 드는 일이다.
미련이 많아서일까. 나의 걸음이 추억의 속도보다 한참 느려서일까.
시간이 흘러꽤 많이 걸어왔다고 생각한 어느 날,
슬쩍 돌아보기라도 하면 그동안 걸어온 노력과 시간이 무색할 만큼
지나온 기억을 향해 달려가 그 앞에 무너지길 반복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과거의 추억에 묶일 수는 없는 일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에 펼쳐질 아름다움을 만날 기회를 놓치는 거니까.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 하더라도, 돌아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여기는 날을 기대하면서 한 걸음을 내딛는다.

*민미레터의 <쓰다듬고 싶은 모든 순간>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