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조각 같은 걸지도 모른다.
커다란 바윗덩이를 보며 거친 바위에 숨어 있는 형상.
사랑을 본다. 망치를 들고 정으로 바위를 쪼갠다.
부스러기가 튀고 더러는 내 얼굴에, 눈에, 손에 튀기도 한다.
드디어 사랑의 형상이 나온다. 그런데 뭔가 못내 아쉽다.
망치질을 조금 더 한다. 사랑의 팔이, 머릿결이, 마음이 파이고 떨어져 나간다.
한참을 때리고 쪼개다 보니 커다랬던 바윗덩이가
마음에 못내 미치지 못했던 아까의 형상보다 훨씬 더 작은 부스러기가 되어있다.
조각난 것들을 다시 붙일 순 없다. 돌이 깨어지고 사랑도 깨어진다.
다른 조각을 위한 다른 바위를 찾는다.
내가 깨서 없애버리는 바위도 있지만, 내가 가진 것으로는
도저히 조각할 수 없는 단단한 바위도 있다.
정을 대고 망치를 내리쳤는데 날이 나가고 망치가 튕겨 나가는 경우도 있다.
닫혀 있는 마음에 보이지 않더라도 눈에 그릴 수 있는 형상을 조각하기까지
석수나 돌이나 아프긴 매한가지다.
석수의 손에는 물집이 잡히고 돌에는 상처 또는 추억이 남는다.
마지막이라고 장담할 수 없으나 마지막이라고 믿고 싶은 완성의 조각을 만나면,
이때껏 이날을 위해 수많은 칼과 망치를 들었다는 걸 비로소 알아챈다.
아름다운 형상을 새기기 위한 망치질은 예술적 몸짓의 연장이지만,
원치 않았던 망치질은 그저 상처를 남기는 행위일 뿐이다.
난 어딘가 나사 하나쯤 빠진 어른이기에 말하고 싶다. 사랑부터 하라고.
사랑부터 하고 싶어도 뒤로 밀리고 돌이켜 후회할 일 많으니,
돌가루를 씹듯 청춘이 괴로울 때 많으니 사랑부터 하라고.
그것도 적당히 대충 하지 말고 제대로, 다 부서져 없어질 때까지 해보라고 말이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틀렸다. 고생은 젊으나 늙으나 최대한 안 하는 게 좋다.
꼭 아파야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아파야만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다만 사랑은, 아프더라도 하는 게 좋다.
바위 입장에서 조각가의 망치질은 아픔이지만
아픔인지 추억인지는 지나고 볼 일이다.
아픈 것도 사랑이고 추억도 사랑이다. 진짜 사랑은 아픔보다 더 큰 것을 남긴다.
*이수인의 <가장 빛나는 계절은 바로 오늘이었어>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