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714월 아마존을 탐험하는 것과 싱싱한 채소를 고르는 것은 다르지 않아
그대아침
2025.07.14
조회 161
가끔 동네 슈퍼에 들러 시장을 봅니다.
한 달에 한두 번 마트에 가서 잔뜩 장을 본 후 냉장고에 쟁여 두고 사는 스타일이 아니라,
퇴근길에 들러 비닐봉지 한두 개 정도로 필요한 만큼만 조금씩 사죠. 
진열대에 가득 쌓인 채소 더미에서 좋은 걸 고르다 보면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곤 합니다.
땅에 발을 붙이고 살고 있다는 걸 느낀다고 할까요.
오늘은 가지가 싱싱한 걸, 양파 가격이 내렸군, 한 묶음에 네 알이 들어 있어,
지난주까진 세 알이었는데 말이야. 시금치를 보니 갑자기 시금치 파스타를 만들어 먹고 싶어지네.
5월보다 7월에 방울토마토가 훨씬 더 달고 향이 진하다는 걸 아는 것,
가끔 목록에 없던 재료를 충동구매 하는 것, 그건 삶이 건강하다는 증거인 것 같습니다.
건강한 삶의 기본은 식욕이거든요.

장을 본 후 집으로 오는 동안 머릿속으로 저녁에 만들 요리를 미리 그려봅니다.
낮 동안 열심히 일하고 동네 술집에서 생맥주에 간단한 안주를 먹고 오는 것도 좋지만,
동네 슈퍼에서 몇 가지 식재료를 사 와서 계절에 맞는 요리를 만들어
맥주와 함께 먹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뭐랄까요 편안하고 안락한 기분이 든다고 할까요, 딱 그 정도의 감정이 들어 좋습니다.
가지볶음을 앞에 놓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며 맥주를 마시고 있노라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인생의 후반은 천천히 달리며 서야 할 정거장에
정확하게 섰다가 다시 출발하는 전철 같아야 좋지 않을까. 
창밖으로 스쳐 가는 저녁의 풍경을 바라보며 아, 이번 생은 별 탈 없이 
잘 지나가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는 거죠.

여행작가로 살아오며 젊은 시절 많은 모험을 겪었습니다.
나이가 들고 보니, 아마존을 탐험하는 것과 동네 슈퍼에서 저녁에 먹을 양배추를 고르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이더라고요. 삶은 한순간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의 전체니까요.
우리는 삶이라는 하나의 커다란 흐름 속에서 작은 시간을 계속해서 살고 있는 것이거든요.
아직 살아가야 할 날들이 남아 있고 미래에 또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는 알 수 없지만,
싱싱한 채소를 고르듯 지금 내 앞의 작은 시간 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다 보면,
어느 훗날 우리가 원하는 장소에 내려 웃을 수 있을 것입니다.

*최갑수의 <기막히게 좋은 것>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