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였는지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대답을 들어보면 신기하게도 작고 사소한 일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비싼 물건이나 자극적이고 강력한 순간보다 사소하지만 긴 시간 속에 행복이 녹아 있었다.
나는 열한 살 무렵 좋아하지도 않는 영어 학원을 억지로 다녔다.
하교 후 제 몸집만 한 책가방을 메고 쫄래쫄래 학원에 뛰어가 잘 모르는 알파벳을
혀로 굴려가며 집중하는 척했다. 지루한 수업 시간을 견디는 방법은 살짝 졸면서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뿐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좋은 일이 생기면 있는 그대로 기뻐할 줄 아는 그 시절의 순수한 나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어느 날 수업 중에 똑똑 노크와 함께 문이 열리고 학원 안내 데스크 선생님이 들어왔다.
“현녕아, 지금 바로 책가방 챙겨서 내려와 부모님 오셨다.”
그 한마디가 망해가는 세상을 구하는 장군의 한마디보다 크고 값졌다.
싱글벙글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삐죽이는 입꼬리를 훤히 드러낸 채 학원을 나섰다.
엄마가 보조석에 앉아서 창문을 내리곤 얼른 차에 타라고 손짓했다.
회사에 계셔야 할 아빠는 운전석에서 비장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뒷좌석에 탄 여섯 살 동생은 “누나야, 우리 어디 가게?”라며 상기되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의아했다. “아빠 우리 어디 가?” “녕아, 놀이동산 가자.”
우와!!! 하늘을 날아갈 듯이 좋았다. 살면서 그때만큼 환희에 가득 찬 적이 있었나?
지금의 나였다면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부터 '아빠는 오늘 회사에서 잘린 걸까?'
'그런데 학원 빠지면 다음 수업 진도를 따라갈 수 있나?'까지
그 이면과 이후의 모든 일에 신경 쓰며 그 순간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좋은 일이 생기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수함이 다시금 살아났으면 좋겠다.
인생은 온통 무지갯빛이 아니라는 걸 아는 나이가 되어버렸고,
하루가 행복하면 사흘쯤은 무미건조하고 이틀은 끔찍하게도 불행하다는 것쯤은 알아버렸다.
그래서 더욱 그 소중한 하루의 기쁨을 보내버리고 싶지 않다.
혹시 지금 당신에게 좋은 일이 찾아왔는가.
언제 다시 달아날지 모를 그 행복을 있는 그대로 완전히 누리기를,
그 가득 찬 환희로 불행이 찾아올 때까지 온전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기를.
*손현녕의 <나는 당신을 편애합니다>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