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엄마가 너덧 살쯤 된 딸의 손을 잡고 전철에 오른다.
때마침 내 건너편 노약자석이 비어 있다.
소녀는 방싯방싯 웃으며 엄마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앉아도 되느냐고 묻는 것 같다.
엄마는 웃음으로 답하면서 소녀를 도와 자리에 앉힌다.
팬터마임으로도 둘은 뜻이 잘 통한다.
엄마는 딸의 곁에 서서 예뻐 못 견디겠다는 듯이 손으로 연신 얼굴을 쓰다듬고
흘러내린 머리칼 한 올까지도 쓸어 올린다. 모녀가 긴 이별 끝에 지금 막 만난 것 같다.
엄마의 사랑에 소녀의 얼굴은 5월의 새잎처럼 피어난다.
이제 막 포장을 뜯은 그림 편지 같기도 하다.
모래톱에 핀 분홍빛 해당화 같고, 연꽃 방죽을 지나온 바람 같다.
깊은 가을 하늘에 떠가는 흰 구름 같고, 호수에 잠겨 있는 별 그림자 같다.
사람의 얼굴은 그가 살아온 세월을 일러주는 이력서라고 한다.
긴 세월을 살아온 나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본 적이 있다.
찡그려도 보고, 화낸 것처럼 무섭게도 해보고,
입장이 난처했던 일을 떠올리며 그때 지었을 표정도 만들어보고,
엘리베이터에서 인사 잘하는 이웃집 소녀를 대했을 때의 모습도 지어본다.
그중 이웃집 소녀를 만났을 때의 내 모습이 가장 마음에 든다.
그렇게 선량한 모습이 내 평상시의 모습이기를 원하지만
늘 그렇게 살지는 못했으니 욕심일 뿐이다.
몇 정거장이나 지났을까. 소녀는 엄마를 올려다보면서 방방 웃는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녀의 손을 잡는다. 다 온 모양이다.
소녀는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채 사뿐히 내린다.
두 사람이 사라진 경로석은 풍경화가 걸려 있었던 자리처럼 횅댕그렁하다.
*이완주의 <어느 따뜻한 오후의 농담>에서 따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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