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4수 오늘만 같아라~ 오늘 하루가 감사한 날들
그대아침
2025.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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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우연히 한국 남자와 결혼한 독일 여자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다 보지는 못했는데, 그녀가 한국과 독일의 문화 차이에 관해 이야기하던 장면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잘 이해되지 않는 한국어 표현 중 하나로
그녀가 꼽은 것이 "열심히 산다"라는 말이었다.
독일어에도 '열심히'와 비슷한 의미의 부사는 있지만, 그 부사를 산다'라는
동사와 연결하지는 않는다. 열심히 공부한다, 열심히 일한다 등의 말은 많이 쓰지만,
열심히 산다는 말은 쓰지 않는다.
독일에서 고작 10여 년 살았을 뿐이지만,내 경험으로도
일하거나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표현에 있어서 열심히'라는 부사보다는
차라리 '부지런히'라는 말을 더 많이 쓰는 것 같다. 
한국에서 꽤 오래 산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열심히 사는 건 뭐예요? 사는 건 그냥 사는 거 아니에요?"

나는 그 말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그러게 사는 건 그냥 사는 거지, 열심히 사는 건 뭘까?
자신의 생계나 가족의 부양을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쌓기 위해
누구나 열심히, 부지런히 일할 수는 있다.
그런데 사는 걸 열심히 산다는 건 또 무슨 의미일까?
도대체 우리는 누군가를 평가할 때 왜 이 말을 제일 먼저 혹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까? 왜 '열심히'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게으르거나 미래를 포기한 사람처럼 생각하는 걸까?
'열심히'라는 부사가 어울리는 문장이 있고, 아닌 문장이 있다.
때론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있고, 열심히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있다.
오십이 된 나는 이제서야 비로소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열심히'라는 부사가 모든 문장에 찰떡같이 맞아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때론 이 부사가 붙어서는 안 되는 문장도 있지 않겠느냐 말이다.

요즘 나는 "오늘만 같아라"라는 말을 한다.
어제나 엊그제 혹은 작년과 비교해 더 나아져야 할 것들을 찾기보다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생각이 드는 나이가 된 것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진즉 이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하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그래도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그녀처럼, 나도 중얼거린다.
"사는 건 그냥 사는 거지 뭐." 

*에세이 <전지적 언니 시점>에 수록된 
김지혜의 ‘삶과 어울리는 부사'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