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어떤 친구한테 지독한 소리를 들었다.
"너같이 애들을 막 키워서야 이다음에 무슨 낯으로 애들한테 큰소리를 치겠니?
그 흔한 과외공부 하나 시켜 봤니?딸이 넷씩이나 있는데
피아노나 무용이나 미술 공부같은 걸 따로 시켜 봤니?"
아닌 게 아니라 내 애들 중 예능 방면의 천재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부모를 알량하게 만나 묻혀 있는 게 아닌가 싶은 두려움이 간혹 들긴 하지만
이다음에 큰소리치기 위해 지나친 극성을 떨 생각은 아예 없다.
아이들의 책가방은 무겁다. 그러나 단순한 책가방의 무게만으로
한창 나이의 아이들의 어깨가 그렇게 축 처진 것일까?
부모들의 지나친 사랑, 지나친 극성이 책가방의 몇 배의 무게로
아이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거나 아닐지.
"내가 너한테 어떤 정성을 들였다구. 아마 들인 돈만도 네 몸무게의 몇 배는 될 거다.
그런데 학교를 떨어져 엄마의 평생 소원을 저버려?"
이런 큰소리를 안 쳐도 억울하지 않을 만큼,
꼭 그만큼만 아이들을 위하고 사랑하리라는 게 내가 지키고자 하는 절도다.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이 결코 무게로 그들에게 느껴지지 않기를,
집이, 부모의 슬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바랄 뿐이다.
커서 만일 부자가 되더라도 자기가 속한 사회의 일반적인 수준에
자기 생활을 조화시킬 양식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부자가 못 되더라도
검소한 생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되 인색하지는 않기를
아는 것이 많되 아는 것이 코끝에 걸려 있지 않고 내부에 안정되어 있기를.
무던하기를 멋쟁이이기를.
다만 깊이 사랑하는 모자 모녀끼리의 눈치로,
어느 날 내가 문득 길에서 어느 여인이 안고 가는
들국화 비슷한 홑겹의 가련한 보랏빛 국화를 속으로 몹시 탐내다가
집으로 돌아와 본즉 바로 내 딸이 엄마를 드리고파 샀다면서
똑같은 꽃을 내 방에 꽂아 놓고 나를 기다려 주었듯이 그런 신비한 소망의 닮음,
소망의 냄새 맡기로 내 애들이 그렇게 자라 주기를 바랄 뿐이다.
*박완서의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중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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