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302월 시간은 우리의 모든 가능성을 숙성시키는 중이라고
그대아침
2026.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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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팔레트’는 아주 오래전부터 근처에 있는 국립고등미술학교 학생들이 모이는 아지트였다.
나는 오후 네 시쯤이 카페에 들르기를 좋아하는데 음료 한 잔을 시켜놓고
책이나 노트북을 열기에 아주 적당한 시간이라서다. 
벽에 높이 걸린 그림 가운데 눈에 띄는 하나는 90년대 일했던 웨이터들이 카페에서 있는 그림 한 장.
그 외에도 이 카페에 드나들던 단골 화가가 그렸을 법한 그림들이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다.
역시 독특한 것은 실내장식으로, 큰 거울로 벽면을 채웠는데 거울 뒷면에 돋아난 금속 재질의
곰팡이 같은 얼룩들 덕분에 예술적인 효과가 한층 더 부풀어 오르는 것 같다.

그곳에 앉아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바깥 자리는 소란스러운 듯하지만
안쪽 자리만큼은 안온하고 부드럽다. 그래서 그런가. 그래서 그렇다.
폴 세잔,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등의 화가와
헤밍웨이, 짐 모리슨 같은 예술가가 이 카페의 단골손님이었단다. 물론 나 또한 하하.
주인은 가난한 학생들에게 가끔 와인을 건넸다.
바게트를 건네고 또 만들어놓은 음식들을 권했을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야 학생들 중에 몇몇은 '자주 오니까 정이 들었기 때문일 테고,
그들은 자주 배고파 보였을 테니 주인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호의였을 것이다.
나도 작은 식당의 주인이 된다면 청춘들에게 밥을 차려주는
주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이곳에서였다.

사람은 얻어먹으면 일단은 고맙고 따뜻함을 느끼겠지만 그게 쌓이면 빚이 
된다. 그럴 때 학생들은 이 카페의 주인에게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선물했다.
가진 것이라곤 그려놓은 그림뿐이고, 줄 수 있는 것 역시 그림뿐이었을 테니.

이 카페의 주인이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을 많이 가지고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카페주인은 안 유명한 그림까지 끌어안고 있다고, 그의 좁은 창고에 그림들이 넘쳐난다고
그림들을 덜어내진 않았을 것 같다. 그의 좋은 마음이 그 그림들에게 주문을 걸어 살리고 살려,
화가들도 세상에 하나둘씩 알려지곤 했을 테니까. 아직도 창고에서 숨쉬고 있을 재능들에게,
아직 피어나지 못한 청춘의 가슴들에게 이 카페는 넌지시 말해주는 것만 같다.
시간이 우리를 잠시 막고 있을 뿐. 시간은 당신의 모든 가능성을 숙성시키는 중이라고.

*이병률의 <좋아서 그래>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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