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들었다. 바다의 물결이 새겨진 등 푸른 두 마리의 고등어를
봉지에서 꺼내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을 풀어주듯 싱크볼에 놓아준다.
유선형의 몸체는 다소곳하게 제 배 반쪽을 내보이며 살짝 미끄러진다.
무심을 가장하고 한 마리를 머리 쪽에서 등뼈 가운데 어디쯤을 눌러 잡고
한 손으로 오래 묵은 칼자루를 단단히 잡는다.
한 마리는 굽고 한 마리는 지져 먹을까.
한 마리는 어슷하니 토막내어 조리고 한 마리는 저며 펼쳐 소금 뿌려 구울까.
아니 두 마리 다 저며 펼쳐 조림이나 해야겠다. 통으로 어슷하니 하는 조림보다
펼쳐진 살 속으로 마늘을 듬뿍 넣은 빨간 양념이 속속 배는 게 맛있지.
양념장을 만들어볼까. 진간장, 고추장, 고춧가루, 매실액, 설탕 조금, 물 약간 부어
고춧가루를 불린다. 그동안 칼 손잡이를 뒤집어 마늘을 찧는다.
간단한 양념조차 비율에 맞게 잘 섞어 조화를 맞추어야 하듯
맵고 짜고 시고 떫은 삶을 잘 버무리다보면 인생의 단맛이
의외의 곳에 숨어 있음을 발견할지 모를 일이다.
어느 쪽이 과하거나 부족하면 전체적인 맛을 망치게 되듯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적절한 말과 행동의 농도와 조절이 필요한 법이다.
불에 앉힌 냄비에 감자와 호박을 깐다. 그 위에 고등어를 펼친다.
반대쪽에 퍼즐을 맞추듯 한 마리를 마저 펼치니 맞춤하다.
마음이 맞으면 좁은 침대도 크게 느껴지던 한 쌍처럼 다소곳이 몸을 맞대니
펼쳐진 속살이 부끄러워 양파 이불을 덮어준다.
한때는 서로에게 열중했으나 가끔은 삐걱대는 부부 사이,
하지만 차츰 그 소리가 잦아들듯, 어느 인간관계인들 그렇지 아니할까.
부드러워진다는 건 조금씩 자신을 깎아간다는 것,
서로 불편하지 않을 만큼 양보한다는 게 아닐까.
깊은 냄비에 음식이 완성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나지막한 높이는 숟가락으로 양념국물을 끼얹어야 하는 요리에 안성맞춤이다.
냄비 하나, 그릇 하나의 쓰임새도 이러할진데 사람의 쓰임이야 오죽할까.
타고난 성품대로 재주대로 알맞은 자신의 길을 찾기가 어디 쉬울까마는
그 길을 찾는다면 좀 더 신명나는 삶이 되지 않을까.
칼끝으로 홍고추, 초록 대파 하나씩을 어슷하니 썰어
삶의 고명처럼 얹어보니 붉고 푸른한 냄비의 세상이 조화로워 흐뭇하다.
*<The 수필, 2026 빛나는 수필가>에 수록된
남태희의 ‘고등어를 졸이며’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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