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이 깨끗하다. 그동안 거실 정면엔 커다란 서예 액자를,
소파 뒤에는 으레 산수화를 걸었는데 이번 이사를 하곤 아무것도 걸지 않았다.
처음에는 빈 벽이 밍밍하고 휑한 것 같더니 차츰 눈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몇 달 후, 남편이 베란다에서 묶어둔 액자들을 꺼내왔다.
이사할 때마다 추려내고 남은 것들이다.
명화는 아니지만 다 그 나름의 사연이 있어 버리지 못했다.
남편은 거실 정면에 걸었던 서예 액자를 앞으로 빼냈다.
“이때만 해도 잘 나갔었지.”
액자를 들고 오던 날 남편은 으쓱했다.
남편이 액자 속에 새겨진 한자를 읽는다.
직장에서 모셨던 상사가 퇴직하며 주신 선물이었다.
남편은 그 어른과 해외 출장을 많이 다녔다. 출장을 다녀올 때마다
그의 풍부한 지식과 기발하고 특출한 지혜에 놀랄 때가 많다고 했다.
타인 말에 귀를 기울이고 모난 것을 융화로 풀어서 좋은 성과를 얻어왔다.
나도 연말 회사 모임에서 그 어른을 뵈었다. 과묵하고 소탈해 보이지만
예리하고 철두철미하다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처음 액자를 걸어놓고 남편은 “화광동진(和光同塵)” 또박또박 읽더니
나보고 ‘먼지처럼 살라’고 한마디를 하고 만다.
자기도 액자 주인에게서 고만큼 들었던 내용을 내게 우려먹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먼지처럼 살라는 말이 예사롭지 않았다.
각자가 품은 삶의 의미는 다를 텐데 내 마음에 쏘옥 들어왔다.
‘자신의 빛을 감추고 티끌 속에 섞여 있다’는 ‘화광동진’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지혜와 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자아를 보여주라니 참 어렵다. 얼마나 수양을 하면 가능할까.
나는 ‘화광동진’ 액자를 다시 싸두었다. 한 사람은 일생을 바쳤고
또 한 사람은 젊은 날의 열정을 고스란히 불사르며 맺은 인연,
서로 드러내지 않고 존중해서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부부도 처음엔 서로 빛만 내세우다 융화됐을 것이다.
오십에 이르러서야 그 뜻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액자의 먼지를 닦으며 마음에 이런 액자 하나는 쭉 걸어놓아도 좋겠구나 싶었다.
*조귀순의 <여치와 사담>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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