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1209화 오른손잡이의 왼손 그림은 치유와 자유를 주는 여정
그대아침
2025.12.09
조회 133
전시 첫날, 나는 사람들의 반응을 조심스레 살폈다.
뜻밖에도 관람객들은 내 그림들 앞에서 오랫동안 발걸음을 멈췄다.
어떤 이는 눈시울을 붉히며 그림을 바라보았고, 어떤 이는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전시를 관람한 뒤 일부러 나를 찾아와 말을 건네는 이들도 있었다.
“당신의 왼손 그림을 보고, 완벽함만을 추구하던 제 자신의 누추한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어요.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물론, 모든 반응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게 무슨 초등학교 그림 전시회냐?”라며
기를 죽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관없었다. 
내 왼손 그림이 단지 나를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오른손잡이지만 왼손으로 그림을 그릴 때마다, 파블로 피카소의 말을 종종 떠올린다.
“나는 라파엘처럼 그리는 데 4년이 걸렸지만, 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
이 말은 나의 왼손 그림 여정을 그대로 대변해준다.
그런 마음으로 꾸준히 그림을 그리다 보니, 어느덧 나는 7년 차 왼손 그림 작가가 되었다.
그 사이, 이곳저곳에서 미술관의 요청이 이어져 기획전과 개인전을 열었고,
벌써 10여 차례나 전시를 치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성과와 상관없이,
왼손 그림은 여전히 나에게 치유와 자유를 주는 개인적인 여정이다.

그림을 그리며, 나는 종종 마음에 머무는 짧은 시구를 도화지 한 귀퉁이에 옮겨 적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만의 아포리즘은 어느새 제 이름값을 하며 내 작업의 또 다른 축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생각한다. 시가 별건가? 그림을 그리다가 문득 왼손바닥을 펼치면,
손금 위에 새겨진 듯한 ‘시’라는 글자가 나를 울린다. 그러고 보면 나는 늘 왼손으로 그림을
그려왔지만, 사실은 왼손 그림을 통해 늘 시를 써왔던 셈이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글(詩)과 그림과 그리움의 어원은 같다’라고.
나는 왼손바닥에 새겨진 시의 힘으로 고래처럼 춤을 추고 있었던 것.
세상의 나처럼 실패한 이들을 위해 칭찬을 하고 있었던 것.
시인이 자신의 시에 마침표를 찍지 않듯 나는 오래,
그것도 아주 오래 오른손잡이지만 왼손으로 그림을 그릴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여섯 작가의 인생 분투기 <나의 왼발>중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