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그날이 오면 춘천으로 간다. 사라져가는 한 해의 뒷모습을 향해 '잘 가, 고마웠어'
고개를 끄덕이는 연말, 그날이 오면 아내와 함께 떠나는 하루여행이다.
함께한 세월의 나이테를 더듬으며 우리들이 처음 만났던 그 거리를 걷고, 서로를 기다리던
그 역 앞에 가 서성거리고 이제는 사라진 그 찻집 부근을 오가며 옛날을 떠올린다.
한 여자를 처음 만난 도시, 돌아서서 가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사랑을 느꼈고,
함께 피 흘리며 살았고 지금은 아내와 남편이 되어 늙어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
우리가 처음 만나 걸었던 그 도시는 개인사 안에서 그렇게 푸들푸들 살아 있다.
춘천으로 떠나는 시간여행은 공지천을 끼고 도시의 외곽을 도는 것으로 시작된다.
변한 것도 같고 변하지 않은 것도 같은 서부시장을 한 바퀴 돌고, 번화가인 명동거리를 걷다가
우리가 드나들던 옛 서점 자리에 들어선 찻집으로 올라가 차를 마신다. 우리가 늘 가서
죽치고 앉아있던 분식집과 그 분식집이 있던 요선동은 어둡고 칙칙하게 불경기를 견뎌내고 있었고,
아내의 집이 있던 동네는 어쩌면 이럴 수 있을까 싶게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 시절 그대로였다.
우리가 결혼을 한 소양로 성당까지 우리는 그렇게 추억을 밟으며 걸었다. 그리고 우리들
사랑의 못자리 춘천고등학교 앞 운동장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서던 아내가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진이라도 찍어둘걸.'
우리가 등을 대고 앉아 밤을 새웠던 그 스탠드도, 전국체전에 나갔던 걸 자랑하던
그 본부석 건물도 다 헐려 없어지고 운동장에서는 새롭게 공사가 한창이었다.
옛 모습이 사라진 운동장을 바라보며 우리는 망연히 서 있었다.
스탠드도 사라지고 운동장이 변해도 우리들 추억의 황금연못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현재진행형이리라.
내 젊은 날이여. 무엇이 그다지도 서러웠던가. 무엇이 있어 그렇게도 가슴을 후벼 팠던가.
지난 한 해여 잘 가. 그렇게 손을 흔들며 우리는 12월의 그날이 오면 다시 춘천에 서서 한 해를 보내리라.
다시 오는 한 해여. 어서 오렴. 우리 함께 고요히 늙어가리라. 그렇게 스스로에게 속삭이겠지만
그러나 내 가슴속의 춘천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영원히 청춘이어야 한다고,
하루하루가 청춘이어야 한다고 춘천은 그렇게 우리들의 어깨를 두드리리라.
*한수산의 <우리가 떠나온 아침과 저녁>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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