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814목 '염려'는 사랑의 동의어이자 사랑의 증거임이 틀림없다
그대아침
2025.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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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의 희미한 기억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한겨울에 어머니가 몸살감기로 앓아누웠다.
어머니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다.
해 질 무렵 옷을 챙겨 입고 주말에 문을 연 약국이 있는지 찾아 나섰다.
어둠 속에서 환하게 반짝이는 약국 간판을 발견했다.
나이 지긋한 약사 앞에서 배꼽인사를 한 뒤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어머니 머리맡에 약 봉투를 내려놓으며
빨리 일어나서 약 좀 먹으라고, 죽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어깻죽지를 흔들었다. 어머니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감기에 걸린 어머니에게 죽지 말라고 말했던 걸까.
세월이 한참 흐른 어느 날, 나는 동네 꼬마의 행동을 우연히 엿보다가 
어린 시절의 내 행동을 반추할 수 있었다.

귀갓길이었다. 집 근처 놀이터에서 예닐곱 살쯤 돼 보이는 아이가
아빠와 공놀이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가 던진 연두색 테니스공에 얼굴을 맞은 아빠가 앗 소리를 과장되게 지르며
쓰러지는 척했다. 아이는 아빠의 장난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하더니 울음을 터트리며 물었다.
"아빠, 다쳤어? 내가 아빠 아프게 한 거야?"
난 아이의 천진난만한 말투와 아빠의 장난기 섞인 행동에 살포시 미소 지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내내 어릴 적 내 모습이 어른거렸다.

어린아이에게 부모는 든든한 안식처이자 울타리다. 아이는 부모라는
절대적인 존재의 품 안에서 불안감을 해소하고 차츰 세상을 익혀나간다.
따라서 부모가 아프거나 다치면 아이는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아이 입장에선 자기를 돌봐주는 존재, 아니 어쩌면 하나의 세계가
가뭇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기야 상대방의 편안함만이 아니라 위태함까지 걱정하고 확인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이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염려'는 사랑의 동의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반드시 염려하게 된다.
염려야말로 사랑의 증거임이 틀림없다. 굳이 어른들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이런 이치를 이미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기주의 <보편의 언어>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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