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자신이 날다람쥐가 될 거라 믿었던 나무늘보가 살았다.
나무늘보는 이 나무 저 나무로 휙휙 날아다니는 옆동네 날다람쥐를 보며
언젠가는 그렇게 살리라 야심을 키웠다. 하지만 생각만큼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맛없는 나뭇잎은 그만 먹고 저기 나무 꼭대기에 붙어 있는 탐스러운 열매를 빨리 먹고 싶었다.
나무늘보는 매일 열심히 기어 올라간다고 여겼지만, 늘 제자리 같았다.
가엾은 나무늘보는 아무리 노력해도 열매에 닿지 않는 자신에게 환멸이 났다.
‘어차피 지금 이 자리에 머물러도 괜찮잖아. 여기에도 먹을 게....’
안주하자고 마음먹었지만, 주변에 맛없는 먹이조차 충분치 않았다.
나무늘보는 무기력에 빠져 있다가는 굶어 죽을 거란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나무늘보는 해가 저물 때마다 오늘 올라간 높이만큼 나무에 표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 제자리에 멈춰 있는 듯한 기분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오늘도 한 발자국 더 기어 올라가보자. 천천히 천천히.’
여기까지 왔다고 또 표시했다. 나무늘보는 매일매일 조금씩 높이 나무를 오르자
새로운 풍경과 먹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잠깐 그 자리에 멈춰서 주변을 살피는 여유도 부렸다.
저 꼭대기의 탐스러운 열매에는 언제 도달할지 모르지만,
올라가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다. 배를 곯지도 않았다.
나무늘보는 깨달았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뭐라도 생김을, 나의 무기력은
잠깐 숨을 고르기 위함이었다고, 고개를 돌려보니 날다람쥐는 오늘도 활공 중이다.
나무늘보는 자신의 나무를 계속 오르는 것 자체가 살아가는 의미임을 알았다.
*신미경의 <나를 바꾼 기록 생활>에서 따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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