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한쪽에 유치원 아이들의 꿈과 소망이 적힌 팻말들이 서 있었다.
일일이 세어보진 않았지만, 꽤 여러 개였다.
<뽀로로 아이스크림 가게>를 갖고 싶은 아이,
포근한 침대에서 자고 싶은 아이, 장난감회사 회장님이 되고 싶은 아이,
사탕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은 아이. 키 큰 사람이 되고 싶은 아이.
돈 많은 부자가 되고 싶다는 은근 실속파인 아이.
보면 볼수록 깜찍하고 기발한 아이들의 꿈이 서툴지만 귀여운 글씨체로 적혀있었다.
그런데 그 팻말들 사이에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짜장면 가게주인'이 꿈인 아이의 이름이었다.
나는 팻말에 적힌 이름을 보면서 동명의 남자를 떠올렸다.
수개월 전 낡고 볼품없던 화장실을 새로 고쳐준 남자였다.
환하고 세련된 타일로 옷을 갈아입고 변기와 욕조, 세면기, 수납장까지
모두 신제품으로 교체한 화장실은 깔끔하다 못해 눈이 부셨다.
난 그 모든 결과물이 단 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소년처럼 싱그러운 미소에 약간은 왜소해 보이기까지 했던 그는
알고 보면 대단한 능력자였다. 삼십 대 후반이라는 그는 인건비를 아낀다며
사흘 동안 오로지 혼자서 철거하고, 자재를 날랐다.
공사를 진행하는 동안 그와 함께했던 건 유튜브를 통해 흘러나왔던 음악이 유일했다.
그는 이따금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는데,
텅 빈 화장실에 울려 퍼지는 그의 음색이 제법이었다.
어쩌면 그에게는 노동요였을지도 모를 노랫소리가 좋아서
나는 일부러 먼지 나는 화장실 근처를 어슬렁대기도 했었다.
지금도 그는 어디선가 또 혼자서 무거운 자재를 나르고, 타일을 붙이며
공사에 열중하고 있을 것이다. 몇 년간 캐나다에 살다 왔다는 그는
내년까지만 일하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했었다.
차근차근 벌어서 저축한 돈으로 아내와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캐나다의 어느 소도시에 정착해서 사는 게 꿈이라고 했다.
지난해 피고 졌던 꽃들이 어김없이 돌아와 제자리를 지키는 계절.
이런 계절에는 왠지, 현재를 낭비 없이 사는 사람들의 바람이
꼭 이루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김형주의 <모든 날에 로그인>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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