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냐고, 2년 전 12월에는 연말 특집 기사를
쓰기 위해 대여섯 명의 시민을 인터뷰했다. 건물관리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이는
환갑이 넘어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일을 꼽았고, 자영업을 하는 50대
사장님은 코로나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게 문을 열었던 것을 꼽았다.
그중 제일 인상 깊은 답변은 이제 막 돌 지난 아이를 키우는 30대 남성이
들려준 것이었다.
“작년 12월에 태어난 아이가 얼마 전에 처음으로 열 걸음을 걸었어요.
그 전까지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거든요. 이 아이가 과연 걸을 수 있을까?
걷지 못하면 어떡하지? 그런데 하루는 아이가 제 손을 놓고서 한 발 한
발자기 힘으로 걷더라고요. 세어보니 딱 열 걸음.
그 모습을 보는데 세상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열 걸음을 걸었으니 이 아이는 앞으로도 잘 살아갈 거야, 그런 믿음이 생겼어요.”
지난봄. 다른 도시에 사는 친한 동생이 이제 막 돌이 지난 아이를 데리고 놀러 왔다.
아이를 두 번째로 본 날이었다. 처음 본 건 태어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꽃다발을 들고 동생 집을 찾아갔는데, 아이 몸이 어찌나 작은지
꽃다발 크기와 비슷했다. 누가 잡아주지 않으면 혼자 앉는 일도 어려워하던 아이는
그사이 쑥쑥 자라 이제는 조금씩 걸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날 밥을 먹고 차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가 걷는 모습을 보았다.
아빠가 잡고 있던 손을 놓자 아이는 잠시 갸우뚱하더니 한 걸음 한걸음 천천히 나아갔다.
의심 없이 땅을 딛고 다음 걸음을 내디디는 작은 발을 지켜보았다.
단지 걷는 모습을 보았을 뿐인데 기특하고 뭉클했다.
너는 그렇게 걷게 되겠지. 뛰게 되겠지.
초등학생 딸을 키우는 친구와 나란히 걷던 어느 오후에 들었던 말도 마음에 품고 있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 손바닥에서 나던 냄새가 있거든.
그 냄새를 오직 나만 알고 있다는 게 살아가는 자부심이 될 때가 있어.”
나를 올려다보는 한 얼굴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싶어서 살아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삶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서는 마음을 느끼며,
언젠가는 이 말을 들려주게 될까 궁금해진다.
“안녕. 아이야. 나는 너를 사랑하려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 같아.”
*김달님의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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