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3화 의지 약한 자신을 데리고 한 걸음씩 가는 것이 인생
그대아침
2025.06.03
조회 191
명상을 배우고 싶다며 제자로 받아들여 달라는 요청을 종종 받는다.
하지만 이미 있는 제자 한 명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처지에 새 제자를 두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운명적으로 나와 인연이 맺어진 이 친구는 긴 세월 지도를 받았음에도 큰 진전이 없다.
생각의 뗏목을 타고 마음의 바닷속에 잠겼다 떠오르기를 반복한다.
파도의 물마루에 올랐는가 싶으면 금방 다시 빠져 허우적댄다.
인생의 대양을 어떻게 건널지 못내 걱정이다. 

무엇보다 감정 조절에 서툴다. 자신이 감정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그를 처리한다.
생각의 주인이 아니라 생각이 그의 주인이 되어 꿈속에서조차 끌려다닌다.
의심하고 분석할 것이 너무 많아서 원하는 삶을 매번 뒤로 미룬다.
행복을 수놓기 위한 마음의 실과 바늘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것으로 고통의 천을 짜는 기술만 뛰어나다.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일들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으로부터 달아나는 것도 능력자 수준이다.
생각 속에서 길을 잃는 데 너무 익숙해져, 현재의 순간에서는 유령이 된다.
버스 안에 있지만 버스 안에 있지 않고, 바닷가를 거닐지만 바닷가에 있지 않다.
마치 망원경을 거꾸로 들고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

없는 문제를 만들거나, 좋은 기억을 잊고 나쁜 기억을 꿀주머니처럼 간직하는 데도 전문가이다.
외부의 '나쁜 날씨'를 안으로 끌어들여 '나쁜 날'을 만드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이다.
또한 행복이 '불행 제로'인 상태라고 오해한다. 행복만 있고 불행이 없는 영역은 존재하지 않으며,
행복의 기술은 불행을 포용하는 데 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늘 행복 찾기에 실패한다.
열심히 사다리를 오르지만 그 사다리가 잘못된 벽에 기대어져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딱한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이자에게도 희망은 있다. 이 친구의 연약함 역시 무한한 가능성의 토대라는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의지 약한 자신을 데리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인생의 가장 고귀한 수행이기 때문이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나의 하나뿐인 이 애제자는 바로... 나의 연약한 마음이다.


*류시화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