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껏 인내하는 시간의 마법, 그것이 ‘공을 들인다는 것’일 테다.
좋아하는 동사 중에 ‘공들이다’라는 말을 마음에 품고 산다.
일을 이루는 데 정성과 노력을 많이 들인다는 말, 어감도 뜻도 이유 없이 그냥 좋다.
따뜻한 감정이 싹튼다. 차갑고 삭막하고 팍팍한 현실 속 사건 사고들은
여전히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조차 즐비하게 우리를 기다린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 같은 감정싸움들도
여전히 사람이 있는 커뮤니티 곳곳에서 펼쳐진다. 그래서일까.
그런 우리들의 오늘일지언정 각자의 ‘공들임’이 있다면 꽤 견딜 수 있다.
공들인다는 건 정성껏 열망하는 무언가를 향한 기다림으로 무장한 인고의 시간이다.
긴 터널을 지나가는 듯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때가 있었다.
그럼에도 살아야 했던 내가 선택했고,
나를 또 찾아와 준 기적 같은 책과 이론은 다름 아닌 ‘명상’이었다.
닥치는 대로 읽어 내렸고, 또 여러 형태로 실천을 해 보기도 했지만,
읽기와 쓰기만큼 내게 잘 맞는 일상 명상도 없는 듯하다.
하나만 쳐다보면 잘 모르지만, 전체를 바라봤을 때 그 부재를 아는 느낌이랄까.
각자의 공들임, 그 정성 어린 시간들을 사랑한다.
인내란 ‘좋은 일이 있을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이라는 마법의 주문을
여전히 마음에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공들임에 인고를 겪은 시간의 마법이 존재한다면 난 여전히 기다린다.
그 마법이 눈앞에 기적처럼 펼쳐지는 오늘이 분명 현실 세계에도 있을 거라고,
현실은 다큐가 아닌 때론 믿지 못할 문학작품이 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 좀 더 정성껏, 꾸준히, 아파도 견뎌내 보는 거다.
흐르다 보면 그 마법은 곧 현실이 될지도 모르니까.
오늘의 공들임은 치열한 다큐멘터리였어도 결국 아름다운
내 삶의 문학작품이 될 어느 날을 상상한다. 당신의 공들임도 부디 그러하기를
그리고 그 공들임과 정성의 대상이 항상 우리를 향하기를 바란다.
간절한 공들임 앞에 언제나 정면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다름 아닌 ‘나’이며 ‘우리’일 테니까.
*김혜원의 <오늘의 이름이 나였으면 좋겠어>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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