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구에 가서 아름다운 편지봉투와 편지지를 고르던 옛날,
내 마음의 언덕엔 네잎클로버가 지천이었고
찔레꽃이 눈부셨다.
키 큰 미루나무 이파리가 햇살에 반짝였다.
돌아보면 봉투의 용도에 따라
내 마음의 순도도 탁하게 변해왔다.
짝사랑의 연애편지와 월급봉투와 행정봉투를 거쳐
지금은 축의금이며 부의금 봉투뿐이다.
아니면 다달이 날아오는 각종 카드대금 명세서 봉투뿐이다.
이제 나에게 들고나는 봉투에서는 돈 냄새가 난다.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보내고
우체부를 기다리던 저린 마음은 이제 없다.
내 마음의 편지봉투는 늙어 버렸다.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뜯겨져버리는 생,
그게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지를 이제야 깨닫는다.
읽혀지지 않는 밀봉된 생은 슬프다.
풀칠해서 건넬 아름다운 이야기가 없다면
오늘도 편지지는 나와 함께
의미 없이 늙어갈 뿐이다.
내가 편지를 쓰는 순간,
세상에는 드디어 네잎클로버가 있고
미루나무 푸른 이파리가 반짝이다.
밤 열차의 차창이 우표로 보인다.
먼 하늘나라에서 누가 편지를 보냈나?
송이송이 흰 글자들이 쏟아진다.
*이정록의 <시인의 서랍>에 수록된
‘편지봉투도 나이를 먹는다’ 따온 글.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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