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421월 순수했던 황금빛 시절이 삶의 나침반이 된다
그대아침
2025.04.21
조회 146
오십대 후반. 이게 지금 내 나이란다. 믿을 수 없는 나이를 먹었다. 내가.
서류상 어떤 착오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러나 거울을 볼 때면 아주 정직한 내 얼굴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
너무 낯설고 우울하게 늙어버린 얼굴. 내가 또 그렇게 발견되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나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게 뭘까. 그런 게 있기나 할까. 
때때로 사는 게 참 부질없구나, 싶어진다.
대체 뭘 바라며 바쁘고 부지런하고 갈등하고 참고 최선을 다 하나.
참 많이 외로웠다. 참 많이 웃고자 노력했고, 참 많이 내 것을 위해 투쟁했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자 참 많이 합리화했고, 참 많이 남을 헐뜯었다.
순수하지 못했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순수한 시절은 태어나서 일곱살 때까지.
그 짧은 황금빛 기간. 
나의 어머니가 온전히 나의 안위를 보살피고 나의 아버지가 오롯이 건강한 남자였고
나의 오라비가 범접하기 어려운 영특한 머슴애였고 여동생의 키가 아직 나보다 작던 시절.
오래된 앵두나무가 검붉은 열매를 높이 달고 어린 나를 위해서
햇살을 반짝 퉁기며 유혹하거나 맑은 냇물속 납작 돌멩이들이 
살 오른 가재들을 어김없이 숨겨두었던 시절.
이웃 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색색으로 물든 은행을 두 손 가득 쥐어주고
싸리나무 울타리 집 툇마루에서 걷지 못하는 언니가
색동옷 지어 입힌 토끼를 아기처럼 안고 나를 비스듬히 건너다보던 시절.
이런 시간이 나에게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시절이 나를 살게 한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누가 그렇게 읊조렸다.
나도 안다. 감히 내가 어찌 나의 황금빛 시절로 돌아가겠나.
다만 나에게 그런 시절이 있음에 감사한다.
적어도 나는 그 짧은 황금빛 시절에 만들어진 어린애임을 기억하고자 할 따름이다.
거울 속 슬프게 처진 얼굴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건
여전히 나에게 황금빛 시절이 후광처럼 살아 있는 덕분이다.
황금빛 시절. 이것이 내 삶을 움직이는 나침반이다.


*황선미의 <익숙한 길의 왼쪽>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