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416수 문득 생각나면 발걸음 해주세요. 언제나 반겨줄게요. 능소화처럼!
그대아침
2025.04.16
조회 157
가끔 지나는 동네 터널 입구에는 무성한 덩굴이 덮여있는데, 
여름만 되면 이름 모를 주황빛 꽃이 피어납니다.
그 꽃의 이름이 어디선가 얼핏 들어봤던 능소화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꽤 시간이 흐른 뒤의 일입니다.
초록의 무성한 잎들 사이사이에 핀 주황색 꽃.
대비되는 보색이기 때문인지 처음에는 딱히 예쁘지도 않고 그리 눈에 띄지도 않았지요. 
그런데 일주일 후에도, 그다음 주에도, 여름이 끝나갈 무렵에도 그대로.
지나갈 때마다 주황의 꽃들이 변함없이 피어 있는 겁니다.
거세게 비바람이 몰아친 다음 날은 조금 듬성듬성하다가 며칠이 지나
다시 보면 또 풍성한 주황빛 물결입니다. 이제는 다른 길을 지나가도,
아직 꽃이 피어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굳이 능소화로 덮인 터널을 향합니다.

벚꽃이 큰 사랑을 받으면서 요즘은 어딜 가나 벚나무가 가득하지요.
엄청난 황홀함으로 피어나는 벚꽃은 그 절정의 기간이 짧아 더 귀하고
그리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이 그렇지요.
아름답지만 넉넉하지 않은 것이야말로 가치 있다고 여겨지니까요.
하지만 능소화를 보세요. 빼어나게 예쁘지도 않고 크게 기억에 남는 첫인상도 아니었지만,
찾을 때마다 이렇게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그 꾸준함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당깁니다.
잠깐의 희소한 아름다움에 끌리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꾸준하고 긴 호흡의 한결같은 매력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습니다. 

그래서 굳이 따져보면 능소화 같은 삶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궂은 상황에서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주고,
또 언제나 그 자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그런 삶. 그런 사람.
한껏 찬란하게 피어올랐다가 금세 힘을 다해 우수수 쏟아 내리는 그런 마음보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아랑곳 않고 싱싱하게,
변함없는 모습으로 곁을 지켜주는 사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을 만큼 찬란한 모습은 아니지만,
적당하고 수수한 아름다움 고르게 분배해 그 이상의 꾸준함으로 함께하는 사람.
그러니 이 자리에 오래오래 있겠습니다. 
문득 생각나 발걸음했을 때 언제나 반겨줄 수 있도록.

*박민욱의 <헤매는 중이지만 해내는 중입니다>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