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이 가까워오는 할머니가 우울감에 상담소를 찾았다.
살아보니 모든 게 덧없어 요즘 우울하고 무덤덤하다며 어떻게 해야 좋으냐고 물었다.
몇 년 전 가족의 자랑이자 애지중지하던 맏아들이 과로로 세상을 떠나면서 불면증에
시달려왔다는 할머니는 이젠 좋은 일도 기쁘지 않고 안 좋은 일도 괴롭지 않다고 했다.
밖으로 나가는 일도 없이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는 일상이 이어졌다.
무덤덤하다고 말하는 눈빛에 초점이 없었다. 덤덤은 공허한 마음에서 나오는 감정이다.
담담함이 자칫 잘못하면 덤덤함이 된다.
담담함이 감정을 느끼되 얽매이지 않는 감정인 데 비해,
덤덤함은 감정이 두려워 감정 자체를 느끼지 않으려고 회피하는 것이다.
감정을 회피하면 살아 있다는 실감을 가지지 못한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크게 나누면 희로애락, 즉 기쁨, 화남, 슬픔,
즐거움이다. 기쁨은 계절로 말하면 봄의 감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으면 생긴다.
봄에 새파란 새싹이 올라오면 기쁨도 올라온다. 여름의 감정은 뜨거운
화남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화가 난다. 젊은 날 우리가 자주 느끼는
감정이 화남이다. 뜻대로 안 되고 마음대로 안 돼 화나는 일이 많다.
슬픔은 가을의 감정이다. 낙엽이 떨어지듯 원하는 것을 잃을 때 슬픔이
생긴다. 복구할 수 없는 상실이 가져오는 감정이다. 즐거움은 겨울의 감정이다.
더 이상 기쁨, 화, 슬픔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얽매이지 않는다.
중년까지 삶에서 그런 감정들에 잘 물들면 노년에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덤덤한 할머니에게는 담담하게 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담 없고 가벼운 감정부터 경험할 필요가 있다.
감각경험은 이럴 때 유용한 감정 경험법이다.
오감으로 느낄 때 "아, 좋다!"고 말하면 되는 간단하고 쉬운 경험법이다.
봄바람이 살랑 뺨을 스칠 때 "아, 좋다!"고 하면 된다.
부드러운 옷감의 감촉에 "아, 좋다!"고 하면 된다.
할머니는 상담소를 둘러보다 "조명이 좋다"고 했다. 담담함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덤덤에서 담담으로, 혹독한 인생이었지만 조금이라도 그 겨울이 즐거워지는 길이다.
*이서원의 <나를 살리는 말들>에서 따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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