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 김경숙 선생님을 꼭 찾고 싶습니다. ㅠ
룽찌엄마
2026.10.22
조회 5
박승화 님 안녕하세요. 매일 오후 감미로운 음악과 따뜻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네주셔서 감사히 듣고 있는 96학번 애청자입니다. 오늘 저는 제 인생에서 가장 눈부시게 따뜻했던 기억이자, 가슴속 깊이 묻어둔 영원한 은사님인 김경숙 선생님을 찾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때는 1984년, 저는 전남 함평에 있던 영창국민학교 1학년 어린아이였습니다.
그 시절 학교 화장실은 깊고 컴컴한 푸세식(재래식)이었습니다. 어느 날 수업 시간에 화장실에 갔던 저는 그만 발을 헛디뎌 그 깊은 변소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온몸은 오물로 뒤덮였고, 여덟 살 어린 마음은 창피함과 무서움으로 까무러칠 것만 같았습니다. 모두가 코를 막고 피할 법한 그 상황에서, 저를 온전히 안아주고 다정하게 달래주며 깨끗이 씻겨주셨던 분이 바로 나의 첫 담임 선생님, 김경숙 선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의 내리사랑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저희 집은 무척 가난해서 제 방도, 침대도 없었습니다. 엄마에게 늘 "나도 침대에서 자보고 싶다"며 떼를 쓰던 철없는 소리를 한다고 저희 엄마가 푸념으로 말씀하셨던 걸 기억하시고는, 선생님께서는 퇴근길에 저를 조용히 부르셨습니다. 그당시 선생님은 함평과 광주를 출퇴근하셨는데 퇴근하시던 길에 광주까지 저를 버스에 태우시고 선생님 댁으로 저를 데려가 주셨습니다.
그토록 소원하던 폭신한 침대에 저를 눕혀 재워주시고, 그날 저녁 제 발에 꼭 맞는 예쁜 빨간 구두까지 선물로 사주셨을 때 저는 마치 동화 속 공주님이 된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 당시 과일속 씨앗을 배웠던걸로 기억하는데 선생님 집에서 사과와 배를 정성스레 잘라 보여주시며, "이것 봐라, 과일 안에는 이렇게 예쁜 씨앗이 들어있단다" 하고 다정하게 눈을 맞춰주시던 선생님의 따뜻한 미소는 마흔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제 마음속에 선명한 사진처럼 남아있습니다.
그때 화장실에 빠져 울던 8살 어린아이는, 선생님과 똑같은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교단에 서서 매일 아이들을 마주할 때마다 저는 늘 선생님을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가끔 지치고 힘들 때면 '나는 왜 선생님만큼 따뜻한 선생이 되지 못할까' 자책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선생님이 더 보고 싶고, 그 품이 그리워 눈물이 납니다.
그때 당시 선생님 연세가 서른 중후반쯤 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40여 년이 흘렀으니 거의 여든 가까이 되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또한 저희 엄마 역시 그때 선생님과 마지막으로 통화할 때 집에 안 좋은 일이 있어서 평소와 달리 다소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았던 게 40년 넘게 마음에 걸리신다고 합니다. 늘 죄송한 마음을 품고 살아오신 저희 엄마 역시, 김경숙 선생님을 너무나도 찾고 싶어 하십니다.
저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광주로 이사를 왔고, 선생님도 그해 아니면 그다음 해쯤에 경기도 용인으로 전근을 가셨다는 것까지 알아보았습니다. 교육청 '스승찾기'를 통해 백방으로 수소문해 보았지만, 이미 오래전에 퇴직하셔서 개인정보 때문에 더는 찾을 길이 없다는 안타까운 답변만 받았습니다. 이제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가 되셨을 나의 천사 같은 선생님. 이제는 어엿한 후배 교사가 된 제자가 선생님이 사주신 빨간 구두를 기억하며 선생님을 꼭 뵙고싶습니다.
"김경숙 선생님.
제자가 선생님 뒤를 이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보여주신 참 사랑을 닮아가고 싶다고, 꼭 한 번 마주 뵙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방송을 듣고 계시는 청취자분들 중에, 1984년도 전남 함평 영창국민학교에 계셨거나, 당시 광주에 거주하셨던 분, 혹은 그 이후 경기도 용인 지역 초등학교에서 근무하셨던 [김경숙] 선생님을 아시는 분이 계신다면 제발 작은 제보라도 꼭 부탁드립니다. 박승화 님, 제 간절한 목소리를 세상에 꼭 전해 기적을 만들어주세요. 감사합니다.

댓글

()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