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추억의 그 날
정화가
2011.08.18
조회 33
저는 10대서 부터 건망증이 무지 심했습니다.
이를 닦으러 욕실에 들어갔다가도 내가 뭐하러 여기에 왔는지를 까먹어서
야밤에 머리를 감는다던지, 칫솔에 치약대신 폼클린징을 묻힌다던지 건망증 때문에 그런 일은 다반사였네요.
별 별 짓을 다 해봤네요.
그리고 저의 치명적인 단점인 건망증 때문에 잊지 못할 이별도 겪었습니다.
제가 스물 한 살 때 여름 방학 때 일이네요.
그 땐 인터넷으로 친구사귀기가 한창 유행을 하던 때 였습니다.
채팅을 하고 마음에 들면 연락처 주고 받고 만나던 때 였는데요.
저는 그 때 동아리 모임에서 빠삐용이라고 영화 모임을 하던 때 였는데 하루는 모임을 땡땡이 치고 학교 전산실에서 채팅을 하고 있었습니다.
재미삼아 했던건데 그 날 정말 괜찮은 친구를 만난거에요.
말투도 고상하니 고급 어휘를 쓰는 것이 정말 제 맘에 들었어요.
저랑 얘기도 잘 통하고, 게다가 취미도 똑같더라고요.
음악감상과 영화감상을 좋아하는.
그래서 바로 만나자고 연락처를 받았고
저는 그 연락처를 노트에 받아 적었습니다.
그리고 말 나온 김에 바로 시간될 때 만나자고 해서 약속 장소까지 상세하게 그 노트에 기록을 해뒀습니다.
한창 외모가 전부인양 신경쓰고 다닐 때라
며칠 뒤면 만난다고 저는 머리도 하고, 새옷도 사고 그랬죠.
건망증 때문에 잊지 않기 위해 얼마나 기억을 했는지 몰라요.
그리고 만나기로 한 날
특별히 더 신경을 쓰고 나갔습니다.
메모도 꼭 챙기고요.
버스를 타려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안오길래 저는 가방 정리를 했습니다.
가방에 영수증이나 쓰레기 등을 정리해서 버렸습니다.
주머니에 든 것도 아낌없이 쓰레기통에 버려버렸습니다.
정리를 한 뒤 바로 버스가 오기에 얼른 탔고요.
가만 어디였더라...
가방을 열고 메모지를 확인하려는데 아무리 메모지를 찾아도 뵈질 않는거에요.
이상하다. 분명히 둔것 같은데..어쩌지. 연락처랑 장소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데.
어디 컴퓨터 전산실이라도 찾아가서 확인을 해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하애졌습니다.
그 때 생각났습니다.
제가 쓰레기통에 가방 정리하면서 그 메모지 또한 버려버렸단 사실을요.
다시 간다고 한들 찾을 수도 없을 테고..
허무하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를 얼마나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했을지
본의 아니게 바람을 맞힌 상황이라서 빨리 오해를 풀려고 전산실에 가 그를 찾았지만
그 날 이후 더는 그를 온라인 상에서 만나질 못했습니다.
아마도 단단히 오해를 했거나, 상처를 받았었나봐요.
그 때 생각을 하면 아직도 허무하고 아쉽기만 합니다.
만났더라면 잘됐을 것도 같은데..
어디선가 그 분 잘 살고 있을거라 믿습니다.

양하영 촛불켜는 밤

댓글

()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