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거리던 봄날,
꽃그늘아래 앉아 잠시 쉬어 가고 싶던 아름답기만 했던 봄날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그 꽃길을 눈물로 숨 가쁘게 달려가야 했던
올해 벚꽃과의 만남은 내겐‘슬픔’이었다.
이제 그 길에도 시간이 흘러 알록달록 고운 물이 들었다.
그래 가을이다.
축복의 가을이다.
초록이 전혀 그립지 않다, 지금 같아선
올해 초록은 내겐‘아픔’이었으니까.
나뭇잎 사이를 스치는 바람결도 행복하다는 듯.
가을 소포를 받아 안은 소년처럼 난 그 길에 안녕을 고했다.
별 일없이 순항을 할 경우엔 각종 검사만 남겨 두고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지하주차장으로 가는 길목
잠시 의자에 앉아 벅차오르는 감정을 어찌 할 수 없어
입술을 깨물고 참다가 쏟다가 참다가......
아이도 감회가 남다른지 머물렀던 병동을 찾아
간호사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제 숨결 스쳐 지났던 곳곳
핸드폰 렌즈에 담느라 여념이 없고.
이내 둘은 백화점으로 달려가
비니를 사고 저녁을 먹고 치료 끝! 자축을 했다.
일곱 살, 왕건 드라마를 보며 고려사 만화책 한 권을 외워 버리곤
그 앞, 뒤 책을 사 달라 3개월을 조르던,
초등 1학년엔
만 18세가 되면 프랑스나 영국으로 유학을 보내 달라
큰 소리를 치던, 이유인즉 사회학이 하고 싶대나.
벌써 이 사회의 불합리를 눈치 채어 버렸나.^^
2학년에는 세계 3대 황제처럼 '황제'가 꿈이던,
제게 없는 책이 친구 집에 있으면
놀러간다며 휴일도 가리지 않고 가서는
혼자 떡하니 방 차지하고 책을 읽어 대던 녀석,
이라크 전쟁을 뉴스로 접하며 모두들 악의 축,
세계 정의 구현을 외치는데
4학년 녀석의 입에서 실질적 목적은‘석유’라며
단편적 지식이지만 나를 놀라게 했던 그 아이에게
난 많은 꿈을 꾸었었다.
중2 때는 3인조로 전교생 앞에서 춤을 추며
사춘기를 맞더니
급기야 지금은 작곡가를 꿈꾸며
마스크를 하고 강남으로 오디션 면접을 가기도 하고
틈만 나면 몸으로 리듬을 타느라 흔들어 댄다.
얼른 꿈에서 깨어나야 할텐데......
그런데 이 아이,
이다음에 조그만 찻집을 하나 꾸리겠다고 해도 난 기쁠 거다.
쉽게 부서지지 않고 더 많이 사랑할 줄 알고
석양이 드리우는 그림자의 길이도 잴 줄 알고
마음으로 고요히 말하는 법도 알았으면
진정 무엇이든, 제 열정 살라 참행복을 누릴 수만 있다면
난,
인생 9단이라 높이 칭하며 세워줄 거다.
대신 이 사회에 ‘소금’처럼만 살 수만 있다면 더 좋겠다.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나 비싸고 혹독하고 아픈
수업료를 치르고 얻은 깨우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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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눈빛이 많이 깊어졌다.
많이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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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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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음악이 정말 좋네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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