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같은 고교시절의 아름다운 합창
정명현
2012.02.14
조회 63
영화같은 고교시절의 아름다운 합창

80년대 고등학교(남양주 동화고등학교) 학창시절.
남양주시에 위치한 저희 학교는 당시 방과 후 교실에 남아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밤 9시로 제한하고 있었는데, 제한시간이 가까워지면 야간당직 선생님은 모든 학생들을 강제 퇴교시켰습니다.
그래서 저와 몇몇 친구들은 방과 후 학교에 남아 공부할 때면 학교 밖으로 나와야 했고, 밤 11시가 되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2시간이나 지난 밤 11시까지 기다려야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지요.
당직 선생이 밤 11시쯤 되면 당직실로 돌아가 잠에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교실로 들어가 불을 켜고 공부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춥기 이전에는 이 같은 어려움 정도는 참을 수 있었지만, 찬기가 느껴지기 시작하는 늦가을로 접어들면서는 그리 수월치가 않았습니다.

학교에 남지 않고 퇴교하는 대부분의 동료들이 사설독서실로 가거나 부모가 기다리는 따뜻한 집으로 귀가했지만, 우리는 경제적 여유나 반겨주는 부모님이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기에 비용을 들여 학원에 다니거나 사설독서실에서 자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비슷한 처지의 우리들은 학교 밖에서 입실 기회를 노리며 기다리는 동안 늦은 시간이라 손님 없이 썰렁한 근처 단골 분식점에서 라면이나 떡볶이를 먹고 TV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물론 우리들 옆에는 책가방이 항상 따라다녔고 라면을 먹으면서도 공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기다리던 밤 11시가 가까워지자 학교 담 빈틈을 통해 교실복도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곤 교실로 들어가 공부하기 위해 남학생 반 여학생 반 가리지 않고 돌며 열려 있는 교실 문이나 창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당직 선생님이 각 교실을 둘러보며 아무리 철저하게 점검하고 문을 잠근다 해도 잠기지 않거나 열린 채 남아 있는 창문이 늘 있기 마렴이거든요.

우리는 교실에 들어가면 다음날 아침까지 무사하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당직선생은 이미 당직실에서 곤하게 잠든 상태였고, 아침에나 얼굴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그렇게 동료들과 모여 어렵게 공부하면서 졸음이나 지루함으로 괴로울 때도 있었지만, 이런 환경에서나마 공부할 수 있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일부는 졸음을 쫓기 위해 창문을 열고 찬 공기를 들이마시거나 아예 밖으로 나가 찬물로 세수를 하고 들어오곤 했지요.

하지만 몇몇은 좀 색다른 방법으로 졸음을 떨쳐냈습니다.

우리 중 1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동료들이 잘 보이는 맨 앞 책상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의 손에는 30cm 플라스틱 자가 쥐어져 있었지요.
“자! 여기를 봐! 지금부터 내가 지휘할 테니까, 지휘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거야. 알겠지?!”
“그래! 좋아. 시작해봐! 그런데 곡목은 뭐야?”

우리들은 지휘자의 제안에 아우성으로 흔쾌히 호응했고, 동시에 자가 들린 지휘자의 손과 팔은 이미 너울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우리들은 한창 유행하던 대중가요 몇 곡을 제시했고, 그에 맞춰 지휘와 함께 교실에는 환희의 찬가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선택한 곡은 당시 '젊은이의 가요제'에 참가해 히트를 쳤던 라이너스(Linus)의 ‘연’으로, 미션스쿨에 다니는 우리들로서는 어렵지 않게 화음을 곁들여 부르기에 적합했습니다.

“동네 꼬마 녀석들 추운 줄도 모르고, 언덕위에 모여서, 할아버지께서 만들어 주신 연을 날리고 있네...”

우리는 하나의 소리를 냈고, 교실 안은 대입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절규를 반항적 일탈의 기쁨으로 승화시킨 환상의 목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몇몇은 화음을 넣어가며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냈고, 또 다른 친구들은 손에 볼펜이나 젓가락을 집어 들고 지휘자와 함께 공동지휘자가 됐습니다.
1절이 끝나고 2절이 시작될 쯤, 이심전심이었을까?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모두 일어나 책상 위로 올랐고, 서로에게 팔을 저으며 그에 맞춰 합창이 계속됐습니다. 환상의 하모니는 극치에 달했습
니다.

그들의 함창은 대입 성공을 기원하는 애절함이었고 불안함을 떨치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지휘는 미래를 그리는 행위예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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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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