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니가 벌어졌고,
나이는 24살인데 머리숱이 없어 한참 형인줄 알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92년도, 제대하고 복학하면서 저희 옆방에 세들어살던 자칭 이소룡의
후예라고 불러달라던 영식이는 틈만나면 아령을 들고 잔근육을 키워야
한다면서 입으로 바람소리를 내기도했고, 마당에서 반바지만 입은채
죄없는 목련나무를 향해 하이킥을 날리곤 했었습니다.
자기몸을 끔찍히 생각해 커피도 안마시고, 담배도 안피웠으며 술도 안마셨던 영식이는 보기와는 다르게 사랑한번 못해본 쑥맥이었습니다.
마음으로 우정을 나눌 마땅한 친구가 없었던때 영식이는 너무나도 허접하고
순진한 우정으로 제게 다가왔고 우린, 내껄주고도 아깝지 않은 그런 친구사이가 됐습니다. 순진하게만 봤던 영식이는 양다리 세다리까지 걸쳤던 저를
제치고 어느날 결혼을 하겠다면서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올라간다고 영식이는 저보다 결혼을 먼저했고, 아이도 먼저 낳았죠. 그렇게 경제적 여유는 없었지만 우리 두 가정은 정말 화목하게 왕래하며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37살이 될무렵,
어느날 갑자기 영식이는 수술을 해야 할것같다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니까 신경쓰지말라구...
신장의 호르몬을 조절하는 부신이란 기관이 말썽을 부려 수술을 해야한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수술을 잘 이뤄진것 같아보였습니다.
하지만 2년이 흐른 어느날 다시 작은 종양이 발견됐고, 영식이는 다시 수술대위에 올라가게 됐습니다. 이번엔...불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머리를 모두 밀어서 빵모자를 쓰고나타난 영식이는 해맑게 웃으면서도 괜찮다고 너스레를 떨었고 물좋고 공기좋은 시골에 내려가 한동안 지내고 싶다고 했지만 영식이의 병마는 허락해주지 않았습니다.
종양은 간으로 옮겨져 황달증상이 나타났고, 심지어 혼수상태에 빠지는 지경에 이르렀을때서야...영식이 입에서 미안하다는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그건....의식이 잠시 돌아왔던 영식이로부터 들었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제 소중한 친구, 영식이는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이를 뒤로하고 하늘
나라로 떠나갔습니다.
진정 친구로서 해줘야 할것들을 못해준 저는...지금까지도 마음의 상처로 남아 평생 갚아야할 빚이라 생각하고 친구를 대신해 멀리서나마 가족들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소중한 친구 영식이...
영식이는 앞니가 벌어져서인지 정말 노래를 못불렀습니다.
길거리에서 3천원짜리 선글라스 하나씩 하고 5박 6일의 일정으로 지리산
천왕봉을 거쳐 하산하다가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며 함께 불렀던 노래가 있습니다. 이문세님의 광화문 연가...
이젠 불러도 대답없는 소중한 친구 영식이를 위해 박승화님께서 광화문연가를 불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바보) 대답없는 친구에게...
김정기
2012.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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