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손자
이인순
2015.10.23
조회 239
오늘은 저희 시아버님 생신입니다. 저희 아버님은 젊었을 때부터 지병이 있으셔서 어머님의 도움으로 사셨습니다. 현재는 휠체어에 의지하고 계시구요. 아버님은 약 기운 때문인지 무뚝뚝 하시고 생활 하는데 꼭 필요한 기본적인 말씀외에는 조용하십니다. 식사가 끝나면 바로 주무십니다.
그런 아버님이 요즘 변하셨어요. 바로 여덟살 손자때문이지요. 농사일로 바쁜 아빠와 동생들 돌보느라 바쁜 엄 마가 놀아주지 못하자 할아버지와 야구를 시작했어요. 어떻게 야구를 하냐구요? 휠체어 에 앉은 할아버지가 공을 던지면 손자가 장난감 야구방망이로 멀리 쳐내지요. 몇번 하다 재미없다고 그만둘줄 알았는데 벌써 몇달 째 이어지고 있답니다.
학교 다녀오면 제일 먼저 옆집에 계신 할아버지께 달려갑니다. 야구하러요. 손자는 야구가 끝나면 오늘은 몇대 몇으로 누가 이겼는지 설명하는 것도 잊지않습니다. 손자와의 대결 덕분인지 아버님이 많이 밝아지셨습니다. 웃기도 하시구요. 가끔 잠꼬대로 팔을 휘두르시며 "홈런 " 하고 외치기도 하십니다.
할아버지와 야구 친구가 된 요 녀석이 제 아들입니다. 어제 할아버지께 드린다며 열심히 써 놓은 카드를 살짝 펴 봤습니다. 건강해지려면 운동 을 열심히 해야한다며 꼭 건강해지시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카드 쓰기전에 " 엄마 운동하면 건강해지는거 맞아요?" 라고 묻길래 그래, 그러니까 너도 열심히 운동해 라고 했는데 할아버지께 편지쓰려고 그랬나봐요. 순간 제가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동안 아버님을 기쁘시게 한 적이 몇번이나 있었나 반성하게 되었지요. 아버님은 환자니까 원래 무뚝뚝하시니까 라고 아버님과 소통하지 못함을 당 연하게 여긴건 아닌지.
남편과 저는 아들의 카드를 보며 우리둘 보다 손자가 낫다며 멋적게 웃었습니다. 아들 잘 키웠다고 칭찬받아야 하나?
저도 라디오를 빌어 짧은 음성 편지 드릴게요. 아버님 생신 축하드려요. 지금보다 더 많이 웃으셨으면 좋겠어요. 건강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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