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노래
김순자
2012.09.13
조회 59
외할머니가 안 계신 엄마는 고모할머니를 의지하면서 같이 늙어가셨습니다.

해마다 가을철이면 한 해 농사를 다 지으셔서 일년치 먹을 것을 다 챙겨주셨

지요. 고모할머니댁에 가실 때면 엄마는 할아버지가 드실 술 부터 시작해서

음료수 사탕 도시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이것저것을 다 챙겨서 차 트렁크에

싣고 온 가족이 떠났답니다.

그야말로 가을여행이었지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한 번씩 고모할머니

댁에 가는 날을 잡아서 온가족은 분주하게 움직였답니다.

코스모스가 하늘하늘 춤추고 파아란 양털구름이 너울너울 길을 안내해주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정말 상쾌 그 자체였지요.

조카들은 차 안에서 재잘재잘 떠들고 엄마는 이런 저런 옛날에 있었던 일

들을 되세기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한 숨 한 번 쉬었다가 지금은 정말

살기 좋지. 그 때는 정말 돌아서면 배 고프고 돌아서면 배 고프고 해서 정말

거지가 뱃속에 살았다면서 ...말 끝을 흐리셨답니다.

그렇게 가을정취를 맡으면서 도착한 고모할머니댁. 할머니는 저 멀리서

고모할머니 크게 외치는 조카들 목소리에 일어나셔서 손을 흔들어주셨답니

다. 어이구, 내 새끼들 오느라 고생 많았다. 얼른 집으로 들어가자.

고모할머니는 이내 부억으로 들어가시더니 다과상을 차려가지고 나오시고

우리 얼굴도 잠시 여기저기 마당과 뒷뜰을 다니시면서 이것저것 챙겨가지고

나오시기 바쁘셨답니다. 잊어버리고 가면 보내고 난 뒤에 마음이 안 좋다며

앉으시지도 않고 동분서주 하고 다니셨지요.

고모 얼굴 좀 봐요. 조금 있다 챙기고 이 옷 좀 입어봐요. 잘 맞나 보게.

야야, 옷은 조금 있다 입고 나 따라 와라. 호박 좀 따게 . 잘 익었다.

집에 가서 호박죽 쒀 먹어라. 잘 익었다. 빨리 와라. 몇 동 더 따 가지고 가라.

고모할머니는 더 바쁘십니다. 얼굴에 땀이 비오듯 하는데 목에 두른 수건으

로 한 번 쓱 닦더니 이내 또 바깥으로 나가십니다.

저희들은 온 마당을 돌아다니면서 시골냄새를 맡았답니다.

닭들을 쫓아다니면서 외양간에 있는 소를 감상하면서 음매 한 번 따라하고

염소 따라서 매애애애 한 번 따라하고 개가 한 번씩 짖으면 멍멍 따라하고

저희는 그렇게 도시가을이 아닌 시골가을을 만끽했답니다.

그렇게 집 안에서 놀다가 슬슬 동네 마실을 나갔답니다.

집집마다 담장 너머로 열린 감나무에 감들을 보면서 와, 정말 많다.

저 집이 더 많아 하면서 감에 푹 빠져서 아 감탄사만 날렸지요.

그렇게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누렇게 익은 벼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

색깔이 변했다. 황금옷을 곱게 입은 벼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 , 풍년이다.

올해도 풍년이다. 농부님들 여름내내 고생하셔서 풍성한 수확을 해서 정말

고맙다 하면서 조카들에게 설명도 해 주고...

그렇게 시골가을을 노래하고 다녔답니다. 뭔가 바쁘고 활기 찬 모습은

아니지만 평온과 마음의 넉넉함이 주는 맛은 그 어떤 과도 비교할 수 없는

시골정취 였지요. 누구네 조카 왔다면서 손에 바구니를 들고 마당을 들어서

는 동네분들. 귀한 것들을 챙겨주십니다. 도시에 가면 살 수 없다면서 가지고

가서 맛있게 먹으라면서 정을 나눠주셨답니다.

도시에서 만끽하는 가을 색깔과는 또 다른 여유와 포근함, 넉넉함..

저희는 그렇게 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다시 돌아와서 멍석을 깔고 앉아서

시골밥상을 먹었답니다. 채소들의 만찬 속에서 풍성한 식사를 하면서..

지금은 돌아가셔서 갈 수 없는 시골정취를 가슴 속으로 그려봅니다.

숨 쉬면서 맡아보고 싶은데 이제는 추억으로 그리며 하늘에 그려봅니다

고모할머니의 따뜻한 마음과 훈훈하게 나눠지시던 그 정을 함께...

가을이 익어갈 때면 고모할머니의 모습이 더 그립습니다. 동네분들의

따뜻한 정도 그리워집니다.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사람냄새가 가을속에

익어갑니다. 따뜻한 마음들이 가슴을 파고 들어옵니다.

신청곡 이동원, 박인수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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