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부터 가을이면 남편은 내게 설악 단풍을 보여주싶다고
일부러 한계령가 진부령 고개 굽이굽이를 돌면서 드라이브로 돌아줍니다.
몸이 불편해서 남들 다 가는 가을 산을 구경하지 못하는 나만을 위해서랍니다.
한계령 휴게소에서 커피한잔 마시는 것도 큰 즐거움이고, 그곳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내려다 보는것이 이젠 해마다 한번씩의 연례행사가 되었지요.
올해도 역시 하루 시간을 내서 한계령 고개를 올랐는데, 그 휴게소는
폐쇄되었다고 문이 굳게 닫혀있어 추억 하나을 잃은 것 같아서 많이 섭섭하더군요.
몇해 동안 이 한계령 오를때는 언제나 노래에 얽힌
예전의 아픈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지곤 하지요.
17년전 어느날 인도로 뛰어든 차는 한순간에 내 인생을 바꿔 놓았습니다
한쪽 발을 잃게 된 것 입니다.
그때는 도저히 앞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어 많이도 방황하고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그나마 나를 삶의길로 채찍질한건 무엇보다도 유치원 다니는 어린 아이들이었고,
매일 아침마다 내 기도가 나온다며 걱정해주던 청소아주머니를 비롯해
병원의 모든 사람들,
특히 이웃 병실에 입원해있던 분들의 위로와 격려가 큰 힘이 되었지요.
자신들도 몸이 불편하면서도 나를위해 배려를 잊지않았던 고마운 사람들.
어느날 병실사람들 몇명이 나를 위로해주려고 노래방엘 업고 간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우연히 불렀던 "한계령"이란 노래 가사가 얼마나 마음에 절절하게 닿았던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듯 큰 충격을 받았답니다.
삶의 경계에서 방황하던 나에게
반드시 다시 일어나야한다고, 눈물을 닦고 다시 세상으로 나가라고
한계령은 그 웅장한 목소리로 꾸짖고 달래주고있엇습니다.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산아래 젖은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산 저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고 내가슴을 쓸어 내리네'
올가을 찾아간 한계령은 나에게 단풍처럼 붉게 그렇게 열정적으로 살라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정기를 그대로 가슴에 담고 마음을 다잡고 살아갈겁니다.
몸이 많이 불편하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온 내 자신이 무엇보다도 자랑스럽고 대견하고,
늘 옆에서 보살펴준 남편과 구김살없이 자라 이제 건장한 청년들이 된 아이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옛날 가족보다 더한 사랑을 주었던 병실 동료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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