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싶은 집
정순이
2013.02.18
조회 463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작은 흙마당이 있는 집

감나무 한 그루 서 있고
작은 텃밭에는 푸성귀가 자라고
낮은 담장 아래서는 꽃들이 피어나고

은은한 빛이 배이는 창호문가
순한 나뭇결이 만져지는 책상이 있고
낡고 편안한 의자가 있는 집

문을 열고 나서면
낮은 어깨를 마주한 지붕들 사이로
구불구불 골목길이 나 있고
봉숭아 고추 깻잎 상추 수세미 나팔꽃 화분들이
촘촘히 놓인 돌계단 길이 있고

흰 빨래 널린 공터 마당에
볼이 발그란 아이들이 뛰놀고
와상 한켠에선 할머니들이
풋콩을 까고 나물을 다듬고

일 마치고 온 남녀들이 막걸리와 맥주잔을 권하는
그런 삽상한 인정과 알맞은 무관심이 있는 곳

아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제발 헐리지 않고 높이 들어서지 않고
돈으로 팔리지 않고 헤아려지지 않는
모두들 따사로운 가난이 있는 집
석양빛과 달빛조차 골고루 나눠 갖는
삶의 숨결이 무늬진 아주 작고 작은 집


내가 살고 싶은 집 / 박노해 詩



몇 해 전 만해도 내가 살고 싶은 집이
도심의 평수 넓은 고층 아파트였다면
이젠 작은 흙마당 있는 작은 집이
그리워지는 나이가 되었네요
숨쉰다는 말이 뭔지 알게 된 셈이예요
봄이 오는 길목
피부로 느껴지는 동네에서
이 시가 훅 다가오는 날이에요


터 / 신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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