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가요]아버지와 둘이 떠난 봄 소풍!!
양미영
2013.03.13
조회 54
아버지와 둘이 떠난 봄 소풍....

희끗한 머리 누가 보면 할아버지 같다 놀린다며 어떻게든 감추어 보려고 빗질을 하고 또 하며 거울을 보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 옆에서 딸은 추임새를 넣으며 장단을 맞춥니다.

“와, 우리 아버지 진짜 멋진걸요! 할아버지는 무슨, 멋진 총각이라고 해도 믿겠어요.”

딸과 떠나는 봄나들이에 마음이 들떠 몸의 고통은 아주 잊어버린 듯 가벼워 보였습니다.

제 아버지의 고향은 북한의 개성, 이 만리도 아닌 지척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설움을 임진각 평화의 동산에서 달래기 위해 그 곳으로 봄나들이를 떠나려는 것이었지요.

“아버지, 몸은 괜찮아요? 불편하면 언제든 말씀하셔요.”

그러자 아버지는 소년 같은 미소를 방긋 지어보이며 말씀하십니다.

“봄햇살이 아주 그만이구나. 좋아! 아주 좋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봄을 맞으러 나온 많은 사람들을 보며 신나 어쩔 줄 몰라 함박꽃을 마구 피어대는 아버지를 보니 저도 어느새 무겁고 걱정되었던 마음이 사라지며 아버지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아버지, 여기가 좋겠어요.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도 그만이고 아버지 몸 불편하지 않게 기대기도 좋을 것 같아요.”

돗자리를 깔고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넓게 펼쳐진 잔디밭과 봄 햇살 마구 뿌려대는 하늘, 그리고 그 사이를 오고가는 이름 모를 사람들을 정겹게 바라보았습니다.
그 때, 아버지의 입에서 들릴 듯 말듯 작은 소리가 새어나와 내 귀를 설레게 했습니다.

"생각난다 그 오솔길
그대가 만들어준 꽃반지끼고
다정히 손잡고 거닐던 오솔길이
이제는 가버린 가슴 아픈 추억......”

순간 아버지의 눈 가에 맺히는 이슬을 저는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딸에게 들켜버린 그 이슬을 구지 지우려 애쓰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그렇게 지나갈 봄을 아쉬워하며 다음 가사를 읊으셨고, 저는 옆에서 아버지의 손을 꼬옥 잡아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말씀하셨지요.

“미영아, 너와 함께 한 오늘의 봄 소풍이 언젠가는 가버린 아픈 추억이 되겠지만 그래도 이 아비에겐 가장 행복한 추억이 될게다.”

그 해 봄, 아버지는 그 행복한 추억을 고이 싸들고 하늘나라로 가셨답니다. 아버지와 함께 한 마지막 봄 소풍이었지요. 아버지의 생애 6개월을 남겨두고 제가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봄, 아버지가 젊은 시절 애창하셨던 <은희>의 <꽃반지 끼고>가 새삼 그립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한 봄 소풍 역시 눈물나게 그리운 날입니다.
-경기도 연천에서 양미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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