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퀴로 가는 자동차# (흥숙이는 지금 어디 있을까?)
쌍둥맘
2003.07.02
조회 63
1982년 12월 어느 날.
학교에 등교하자 마자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반 전체가 기합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다들 자기 책상 위로 올라가 무릎을 꿇고 앉아 눈을 감고 두 손을 들고 있어야만 했지요.

무척 화가 난 선생님의 토막 토막 끊어지는 말씀들을 모아보니 전날 저녁 우리 반 흥숙이와 명자가 방과 후 시간에 화장실 앞에서 크게 싸움을 했다는 것이었지요. 둘 다 학교에서 그토록 하지말라는 애교머리로 학생과 선생님께 자주 지적을 받았고, 가방 안의 사복은 교과서와 떼어놓을 수 없는 단착이었으며 가끔은 언니 립스틱도 발견되어서 담임 선생님께 꿀밤을 먹기도 했던 친구들이었습니다. 당시 총각이셨던 담임 선생님께서 말만한 여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친한 체육선생님과 한숨 쉬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어찌 되었거나 두 친구는 그 전날 사소한 말다툼에서 시작된 싸움이 화장실 뒤편 꽃밭에 처박힌 음료수 병을 깨들기까지 했다며 여학생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선생님께선 긴 탄식을 하셨습니다.

학생과에서 지도를 받은 지 1주일이 되던 토요일, 흥숙이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광주에서 조용필 오빠 콘서트가 있다며 거기를 가야겠다고 학교는 빠지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결석을 하면 큰 일 나는 줄로만 알고 있던 저같은 소심이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지요. 그런데 흥숙이는 그 날 이후로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이야기지만, 흥숙이에겐 아주 공부를 잘 하는 오빠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 오빠가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는데 엄마가 그러셨답니다.
"니 오빠 공부시켜야 되니 너는 고등학교 가지 말어라."

명자와 싸우던 흥숙이의 마음에 해일처럼 밀려드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느껴지고, 흥숙이의 손에 들려있던 깨진 병조각은 명자가 아닌 자신을 향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흥숙이는 좋아하던 조용필 오빠의 콘서트를 빌미로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던 거지요.

그러나 저는 또 기억합니다. 학년 초 학급 환경정리때 늦도록 남아 표나지 않게 함께 하던 흥숙이를, 또 학교 체육대회 때는 체육부장 못지 않게 열심히 활약하던 흥숙이의 땀방울을, 시험이 끝나면 성적이 좋지 않다며 얼굴을 찌푸리며 자기 머리를 쥐어박다가도 트레이드 마크인 애교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이내 다시 열심을 보이던 모습을 말입니다.

1983년 2월에 함께 졸업장을 받지는 못했지만, 학창시절을 떠올릴 때면 늘 함께 떠오르는 친구 중 한 명입니다.

흥숙아,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니?
어디에 있건 건강하게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신청곡 : 나와 같다면(김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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