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날나리이고 싶었습니다.
최미란
2003.07.04
조회 99
일을 하다 멈추고 잠시 옛생각에 잠겨 봅니다.

갈래머리 흰색 블라우스에 검정 스커트. 그리고 검정색 단화.
아침에 밥은 굶어도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 점검은 필수.
등교 시간마다 교문 앞에 떡 버티고 서 있는 생활지도 선생님과
선도부 언니들의 따가운 눈총과 뒤따르는 벌칙을 죽기보다
더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든지 튀는 아이들은 꼭 있었으니
노는 애들이죠.
걔네들의 특징
꽉 끼게 줄여 비비안 리 허리처럼 졸라
숨이라도 크게 쉬면 바늘땀이 터져 버릴 것 같은 교복 블라우스.
스커트는 무릎 아래로 몇센티미터의 규정이 있건만
교문앞에선 정상, 밖에선 허리단을 접고 접어 무릎 선에 맞춰 입고.
항상 앞머리는 핀컬 파마로 멋 부리고. 이 정도는 기본.
그리고 책가방안에는 약간의 색이 있는 로션.
그걸 바르면 얼굴이 뽀샤샤 해 보였거든요.
그리고 립그로스.

교과서, 참고서로 가방이 무거워 지금도 오른쪽 어깨가 약간
쳐져 있는 나.
그치만 노는애들 가방안에는
그 당시 인기 절정이었던 '캔디' 만화책 몇권.
조용필 오빠 사진. 왕영은 언니.
유명한 연예인들의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환상적인 포즈와 미소를 머금고 있는
엽서 사이즈의 수도 없이 많은 사진들을 보며
아침 자율학습. 쉬는 시간할 것 없이 들여다 보고 떠들어 대던
그 아이들.
공부좀 한다 했던 난, 가끔 그 아이들을 향해 조용히 하라고 소리 지르고...
그렇지만 나의 속마음은 부러움...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스스럼없이 하고 싶은대로 하는 날나리들이 부러웠습니다.
난 부모님 말씀, 선생님 말씀, 한치라도 어기면
큰일이라도 나는양 곧이 곧대로.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답답합니다.

같이 어울려 보고 싶었지만
주변의 기대를 저버릴수가 없어 조신하게 학교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던 제게도 날나리들과 함께 할 기회가 왔는데
바로 소풍날 장기자랑.
그 당시 담임 선생님께서는 몇명의 아이들만 참가하는 것보다
우리 반의 대부분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라고 ...
그리하여 생각해 낸 작품이 패션쇼~
며칠을 음악에 맞추어 연습, 구박 받아가며 (상황 반전) 연습.
드디어 소풍날.
야시시한 검정색 롱치마에 스카프 멋들어지게 매고
원투스리 스텝 밟으며 포~즈
얼마나 어색하고 몸은 뻣뻣한 막대기인지...
당당하고 멋진 그 아이들의 모습이 마냥 부렵기만 했습니다.
쇼의 마지막엔 모두 함께 춤을 추어요.
음악에 맞추어 흔들흔들...
우리반이 일등을 해야 한다는 욕심 하나로 얼굴 철판 깔고
흔들었습니다.
그런 내모습에 날나리들 날 보고 놀란 표정.
그후로 몇몇의 노는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정이 많고 의리가 센지 학교 생활에 별 어려움이 없이 잘 보냈습니다.
반장을 했던 전 가끔씩 노는 아이들때문에 학급의 일 추진에 어려움이 있었거든요.
그후론 일사천리.
협조 100%.
지금 전 그때 놀았던 그 애들이 너무 보고 싶습니다.
큰소리로 외치고 싶습니다.

애들아,
나도 이젠 날나리 되었다.
놀땐 확실하게 놀 줄 아는 날나리.

아마 상상이 잘 안갈거야.
지금 보면 그때 날나리였던 아이들이 결혼해선 살림도 잘하고
자식들도 잘 키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열정,끼를 이젠 다른곳에 쏟고 기 때문이겠죠.

이제와서 고백하는데
"나도 노는 애, 날나리이고 싶었어."

오늘 양심 고백하게 해준 유가속 두바퀴 코맙습니다.

장기자랑 마지막 무대에서 신나게 흔들었던 그음악
함께 춤을 추어요.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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