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입대부터 전역까지...
남왕진
2003.07.18
조회 165

군 입대 예정일은 83년8월이였는데 느닷없이 방위병으로
근무를 하던지 현역병으로 입대를 하던지 선택하라는
연락을 받고 한동안 많은 갈등을 했었습니다.
부모님을 비롯한 주위 모든 분들이 방위병으로 근무하라는
권고를 뿌리치고 입대 지원서를 재출하고 아버지께 혼났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83년11월18일 첫눈 내리던날 영주역에서 논산행 입영열차에몸을 실었는데 지원병이라고 차비도 주지않고 건빵을 점심이라고
주는데 목이메어 넘어가지가 않더군요.
훈련소에 입소해서 훈련이 힘들땐 왜 내가 지원해서 힘들게
고생을 사서하고있나하는 후회도 했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훈련이 끝난후 84년1월초에 최전방으로 자대 배치를 받았습니다.
밤이면 영하30도가 넘는 추위와 물이 귀해서 고생도 많았고
대남 방송과 방어 방송때문에 시끄러워서 적응하기가 어려웠고
통신 가설병이라 전봇대위에 올라갔다가 서툴러서 떨어져
다치기도하고 손가락이 얼어서 감각이 없을땐 눈물도 나더군요.
몇달후 행정착오로 중화기 중대로 전출을 가서보니 왕고참이
친한 친구라서 좋아했더니 날이갈수록 서로 어려워지고
계급때문에 겪어야하는 웃지못할 사연도 많았지요.
떠돌이 생활좋아하던 나였지만 군대가서 세번이나 보따리 싸서
전출 다니는 서러움을 맛 보았습니다.
군대생활 20개월하고 고참서열 외우는 병장은 그리많지 않을 것
같군요.....

휴일날 가족들이 맛 있는것 잔뜩해서 면회오는 모습이 너무너무
부러워서 면회한번 오시지않는 부모님이 때로는 원망스럽기도
하였지만 장남 군대보내놓고 면회 못오시는 부모님 마음도
편하지 않을듯했고 동생들 뒷바라지 하시느라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었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픔니다.


민통선 안이라서 민가없는지역으로 가설작업나가서 굶기도 많이
굶었고 어쩌다 여유가있는날은 구멍가게 아가씨가 너무 예뻐서
동기녀석과 서로 잘 보이려고 라면 끓여 먹으러 자주갔던 기억도나고 탄약 박스에 밥 하다가 박스 뚜껑이 튀어올라 얼굴에
화상을 당하기도 하였고 여름엔 임진강에서 남긴 추억도 많고
가을이면 생전 처음으로 먹어보는 달콤한 다래와머루 따 먹다가
나무에서 떨어지기도 하였고 겨울이면 지겹도록 제설 작업하던
그때가 그리워 집니다...

졸병때 교환 근무서면서 고참들한테 전기고문 받으며 혹독하게
배우던 교환병의 근무수칙들...
중화기 중대에서 공용화기 사격대회 준비하느라 들판에서
석달동안 천막살이 하면서 파견나가서 귀가 멍하도록 쏜 총..
군기 교육대가서 완전군장에 뺑뺑이돌던시절..
전역 1개월 남겨두고 중대원들 철책보수 작업들어가서 하루
두시간씩 자면서 전역하기 전날까지 말뚝근무서야했던 고달픈
말년 병장의 서글픈 추억들...
10개월동안 분대장 생활하며얻은 보람도 많고..
첫휴가 나와서 맺은 인연으로 장래를 약속했던 아가씨도
있었지만 너무 부잣집 딸이라서 부담스러워 전역하던날 눈물을
흘리며 헤어지는 아픈 추억도 있었던 나의 군대생활...
스물여섯되던해인 86년5월29일날 전역하기까지 30개월11일동안
군대생활 하면서 더욱어른스러워졌고 전방생활하면서 남다른
긍지와 자부심도 가져보았고 처음엔 후회했지만 역시 남자는
군대 생활을 해보아야만 사회 생활하면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무난히 헤쳐나갈수있는 용기와 지혜를 터득했던 군대생활....
뒤돌아보면 고생스러웠을지언정 이젠 그시절이 아름다운
추억의 한장면으로 남아있습니다...

어제 비무장지대에서 총기사고 난 곳이 예전에 군대생활하던
곳이라서 무척 놀랐는데 큰 피해가 없어서 다행입니다..


조 영남 :점이
최백호: 입영전야
김 민우: 입영 열차안에서
김 광석 : 이등병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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