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다섯 개
김순애
2003.07.21
조회 65
이모가 입원을 하셨습니다.
바쁜 농사철도 마다하신 채 병간호를 자청하신 어머니가
24시간 붙어 계시고, 중한 병도 아니건만
이모는 전직 간호사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가 있어야 한다고 우기시는 통에
하루에 한번 이모 계신 병원으로 출근하던 참이었습니다.

이모는 본디 신내림을 받아 결혼도 아니하시고 육십 중반이 넘은 지금까지 홀로 사셨지요. 다행인지 이모 몸에 깃든 아기동자가 꽤 영험하다 해서 돈도 제법 버신 이모님.. (물론 이건 어머니의 추측이지만) 젊어 마련하신 한옥 바깥채에 세를 세개나 주어 혼잣몸 건사하기엔 그만하신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던 작년, 봄.
이모네 셋집에서 화재가 발생해 안채까지 옮기기 직전 다행히 진압을 했다고 해요. 추위가 가시기 전의 이른 봄인데다 인적이 드문
이모댁인지라 처음 화재를 목격한 분도 이모셨고, 불을 지른 당사자가 화마에 휩싸여 거의 초죽음이 된 광경을 보신 것도 이모셨지요.
나중에 경찰조사에 따르면 세를 내준 방 세 개 중에서, 두 곳에 살던
젊은 남녀가 아마 남다른 사이였던가 봐요. 여자의 배신과 실직에 힘겨워하던 젊은 남자가 그만 홧김에 석윳병에 불을 붙였고

불이 난 것이었답니다. 다행히 불을 지른 분은 목숨은 건졌지만, 3도 화상을 입은데다
밀린 방세는 커녕 병원비조차 마련하기 힘든, 혈혈단신 형편이었고
그를 죽음직전까지 몰았던 아가씬 몇 달째 두문불출이었다고 해요.
홀로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데다 평소 구두쇠였던 이모는
두 사람으로부터 받지 못한 몇달 치 방세에 마음의 병까지 더했던 게지요. 잠만 들면 악몽에 빠져 드문드문 찾아오는 손님까지 마다하고 병원에 입원하신 이모......

의사 소견에 따르면 마음의 병이라더군요. 잠을 제대로 못주무시는데다 식사도 못하고 신경쇠약까지 겹친 게 원인이라고....
신경쓰고 마음 더할 가족 없으니 육십 중반이 믿어지지 않는 이모의 피부, 저만 보면 아이처럼 이것저것 떼를 쓰시는데...,
그래도 전의 씩씩하던 이모기상이 녹슬지 않아 퍽 다행이라 여겼을까요? 어머님은 이모가 하도 스트레스를 주니 그저 죽겠다고 푸념을 하십니다. 때맞춰 링겔을 갈러 오는 간호사에게 거 비싼돈 내고 맞아 봤자 별 소용 없다느니, 주사는 또 왜 그리 아프게 놓냐느니,

나중엔 처녀 얼굴 보니 공방살이 끼어 시집 안가는것이 여러사람 위하는 길이라고 하실 때는 엄마가 민망하실 지경인데다
곁의 환우들에겐 지극히 참견을 해서 같은 병실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수군... 엄마 들으라고 푸념을 하신답니다.

그런 며칠 전...
점심시간에 남편 차를 이용해 평소보다 일찍 병원에 들렀어요.
간이침대에서 오그리고 주무실 엄마 생각에 그날은 제가 하룻동안 있을 생각이었지요. 평소와는 다르게 병실 분위기가 꽃처럼 환해요. 마침 화장실에서 좀 덜 익었지 싶은 복숭아를 씻어 나오시던 엄마... 이모는 그 다섯개의 복숭아를 미운 털이 박혔노라던 간호사에게 한 개, 깊은 밤에만 소변 보러 일어나셔서 늘상 불만이던 할머님과 며느님에게 한 개씩, 늦게까지 책 읽느라 밝혀둔 간이등 때문에 곧잘 마찰을 일으키던 젊은 처녀에게 한 개를 주시곤
마지막 한개를 엄마와 이모, 제가 나눠 먹었지요.
잠시 얼떨떨... 이모의 변화에 의문스러운 저..
이모는 그러거나 말거나 큰소리로 말씀하시네요.
"그래.내가 그럴 줄 알았어. 그년이 보기에 별 복은 없지만서두
가만 보니 이마가 넓고 콧등이 휘지 않은 것이 꼴 사나운 인상이 아니었지...?"이모의 얼굴이 활짝 피어난 이유...는 대강 이렇지요.
이모 셋방에 불 지르고, 한 젊은이의 인생을 망쳐놓은(이모님 말씀에 따르면)젊은 아가씨가 어디서 소문을 들었던지 병원까지 찾아왔더래요. 와선 그동안 밀린 방값 중에서 삼십오만원을 주고
나머지는 차차 벌어 값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리곤 이모 얼굴 보고 가라고 권하는 엄마 말에 염치가 없어서 못 뵌다고 부랴부랴 복숭아 다섯 개만 놓고 갔다는 것이지요.
그래도 아직 세상은 살만한 것이구나. 사람사이의 인정이 죽지는 않았구나...라며 왁자지껄 병실이 소란해지는 것을 보고
이튿날 이모의 퇴원 수속을 밟고 전 가벼운 걸음으로 병원을 나왔답니다. 젊은 기운에 좀 더 기다려볼 것이지.... 오죽했으면 죽을 맘으로 불을 냈을까... 얼굴도 모르는 방화범을 동정하며
막 병원 현관을 나와 횡단보도를 건널 참이었습니다.
무심코 횡단보도 옆을 보다가 전 그만 놀라고 말았어요.
'복숭아 사세요 복숭아, 수박만한 복숭아가 다섯개에 만원..!!'
단 복숭아를 즐겨해서 이모님 댁을 찾을 때면
철에 안 맞게 늘 복숭아를 사시던 엄마.....

좀 푸릇푸릇한 기가 많은 것이 엄마가 씻어오신 복숭아와 딱 비슷하고 가격도 만원에 다섯 개가 아닌가요?
그러고 보니 딱 그 전날은 우리 형제들이 엄마에게 이심전심,
성의껏 용돈을 보내드리는 날이었지 뭐예요?
사는 형편이 뻔한 오빠들은 차치하고 네 딸들이 한달에
십만원씩 보내드리던 것을, 저는 이모 병원 오가느라 지출이 많아서 오만원만 넣겠다 했을 때 엄마는 그마저도 사양하셨는데.....
집에 도착하기 전, 핸드폰 벨이 울립니다.
엄마세요.
"야, 너그 이모가 그 처자에게 돈 도로 돌려주라지 뭐냐.. 지는 근 돈 없이도 산다꼬, 이모 부쩍 기운 차려서 낼은 지발로 걸어 나갈 것 같다. 동안 수고 많았다.."
"엄마 용돈 굳어 좋으시겠네요..?"
막내로 자란 저, 딱 쏘아붙이려다가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어요.
그냥 그랬지요. "엄마.. 복숭아가 벌써 여물었네..? 나중에 이모 퇴원하면 복숭아 한보따라 사 갖고 간다고 전해줘.."
퇴원하자 마자 집을 팔고
아파트 하나 얻어서 사시겠다던 이모,
아직까진 감감무소식입니다.
겉으론 대장부 못지않게 씩씩하고 강하게 느껴지던 이모,
아마 평생 외롭게 사신 탓, 마음의 병이 깊었던 게지요..?
그런 이모 마음 다 헤아리는 이모의 언니...가 바로 울엄만데요,
그런 엄마가 계시고 엄마처럼 내 맘 헤아려주는 언니들이
있으니 저 또한 행복하지요?
이모님 댁에서 불의의 화재를 겪은
그 분 또한 하루빨리 완쾌하시길 빕니다.
아마 이모도 이쯤 용서하셨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블루파티 - 임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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