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으로 동네잔치 한 날.
김은하
2003.07.22
조회 38
안녕하세요?
유영재씨는 좋은 이웃을 가지고 계신지요?
요즘은 이웃의 얼굴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하던데, 적어도 저는 제가 함께 살고 있는 연립주택의 이웃과는 이미 먼 친인척이랍니다.
제가 살고 있는 신축 연립주택의 이웃들을 소개하면 참 재미있습니다.
우선 연립주택의 옆 건물에는 시고모님께서 오랫동안 운영해오신 쉽게 “가든”이라 불리는 음식점이 있습니다.
연립주택의 건축주는 저희 시숙부이신데, 입주한 이웃들도 모두 멀지만 시댁쪽의 친인척이라 할 수 있죠.
좀 길고 복잡한 촌수 설명이 되겠지만 제 남편를 기준으로 해서 제 이웃들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우선 1층엔 101호엔 사촌고모님 가족이, 102호에는 고모부의 사촌동생 내외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2층으로 올라와서 201호엔 저희 가족이 살고 있고, 202호는 현재 분양사무실로 쓰고 있지만 건축주인 숙부님의 아들 즉, 사촌동생이 나중에라도 입주한다고 합니다.
자, 그럼 3층엔요…
301호엔 고모부의 조카 가족이 살고 있고 302호는 아직 비어있지요.
401호엔 고모가 오래 전 하숙을 하셨을 때 그 집에서 하숙 하던 사람이 가정을 이뤄 내달에 입주를 한다네요.
402호엔 고모가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시는 근처여고의 처장님께서 혼자 살고 계세요
지난해 초겨울 삼년 동안의 시댁생활을 마치고 힘들게 집을 마련해서 분가를 할 때 “도둑을 피하려다 강도소굴로 들어가는 구나.” 라고 저희 시어머님께서 말씀하셨어요.
간간히 있던 어머님과의 서운한 일을 피하려 제가 분가를 한다고 생각하시고 시댁 어른들이 더 많은 곳으로 나가는 저를 걱정 반 나무람 반으로 말씀하시는 거였죠.
물론, 불시의 이웃방문에 대비해서 항시 집을 깨끗이 청소해 둬야 한다는 점,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다른 집에 소리가 나지 않도록 소근거리며 다퉈야 한다는 점,
지나치게 편하거나 시원한 복장으로 문밖을 나서면 안 된다는 점.
뭐 그런 것들이 좀 절 긴장하게는 하지만 이렇게 시댁쪽의 친척과 가까이 사는 것도 나쁘지 만은 않네요.
시고모님께서는 바깥일을 하시던 어머님을 대신 해서 어린 제 남편을 키워주신지라 유독 남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시죠.
어려운 시절 겨울 방바닥이 차면 행여 감기나 앓지 않을까 열여섯 어린처녀가 자기의 배위에 백일 된 조카를 재웠다고 하니 지금 생각하면 더욱 마음 찡한 일일꺼예요.
남편도 고모님께 잘하고 아직 손주가 없는 고모님 내외께 저희 딸은 즐거움을 주는 소중한 손녀딸이지요.
이러다 보니 덩달아 저도 많이 아껴주시고 예뻐해 주시네요.
고모님 내외께서는 고생도 많이 하셨지만, 근면하고 성실하신 분이셔서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고 싶으시다며 이런 저런 선행을 하고 계시답니다.
앞으로 십년만 더 열심히 일을 해서 부모 없는 아이들을 보육하는 시설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저희 고모님의 소망이랍니다.
이런 고모님은 가까이 사는 친척들에게도 언제나 베푸는 입장이시죠.
좋은 음식이 생기면 수시로 불러 연립의 식구들이 모두 모여 즐거운 식사를 하게 하시고, 장을 보다가 제철 야채나 과일이 있으면 짝으로 사서 나누어 주십니다.
이러다 보니, 저도 뭔가를 베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스무명 가까이 되는 연립식구들이 뭔가를 함께 하려면 그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 뻔한데, 간신히 생활비를 지출할 수 있을 정도로 떨어져 버린 남편의 수입을 생각하니 적당한 것이 없더라구요 궁리궁리 하다가 모란장에 가서 메주콩을 좋은 것으로 두되 8천원 주고 샀습니다.
저녁나절 메주콩을 깨끗이 씻어 큰 들통에 넣고 하룻밤을 불렸습니다.아침에 일어나니 콩은 충분히 불어 제 껍질을 벗겨내고 있더라구요. 정성스레 손으로 비벼가며 다시 한번 깨끗이 씻어 소금을 약간 넣고 삶았습니다.
구수한 콩냄새가 진동하자, 놀고있던 딸아이는 연신 “엄마, 뭐해요? 엄마, 밥?”하며 물어댔습니다.
콩 한알을 입에 넣어주자 그 작은 엄지 손가락을 세워보이며 맛있다는 듯 눈을 껌벅입니다.
시간반에 걸쳐 그 많은 삶은 콩의 껍질을 다 까고, 집에 있는 참깨와 검은깨를 섞어 물을 섞어가며 믹서기에 갈기 시작했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새 믹서를 사시며 창고 한쪽에 밀어두신 것을 행여 필요하지 않을까 분가한 후 얼마 지나 어머님께 여쭙고 챙겨왔던 낡은 믹서가 처음으로 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며 제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검은깨를 넣어서 인지 더 고소하긴 했지만, 거칠어진 콩국물을 체에 받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이제, 커다란 밀폐용기 두개에 국물을 나눠 담고 냉장고에 넣으면 콩국을 시원하게 만드는 건 냉장고가 좀 도와 주겠지요.
꼬박 몇 시간동안의 작업을 마치고 집집마다 전화를 했습니다.
“네. 규리엄만데요, 이따 저녁에 시간되시면 가든에서 저녁식사 같이 하시자구요…7시반에 뵈어요.”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오고 다시 큰 들통에 물을 올렸습니다.
고모님께 내려가 식당에서 쓰시는 오이와 토마토를 세개씩 얻어와 채치고 예쁘게 썰어 놓는동안 국수 삶을 물은 팔팔 끓었고 지난번 마트 갔을 때 2천원 주고 사다 놓은 소면을 집어 넣었습니다.쫄깃하게 소면을 삶아 건져 사리를 만들고 커다란 채반에 수북이 담아진 소면, 오이와 토마토, 그리고 힘들게 만든 콩국을 들고 고모님 가게로 갔습니다.
행여 저녁시간, 가든 손님이 많았다면 그렇게 모이는 것도 폐가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다행히도(?) 손님은 한 테이블 밖에 없더라구요.
101호 학생 둘과 402호 처장님 빼고 모두 모이니 빠지고 열여섯명 이었습니다.가든의 냉면그릇을 가져다가 국수를 담고, 야채를 얹어 한쪽 가장자리에서 조심스레 콩국을 부으니 그럴듯한 콩국수가 완성되었습니다.
소금을 타서 맛보신 이웃들은 모두 맛있다며 제 노고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 칭찬도 기분 좋았지만, 저도 남다른 이웃들에게 뭔가 베풀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답니다.
만원으로 동네 잔치한 날, 연립주택의 이웃들은 열시가 되도록 서로 이야기 꽃을 피우며 소박하면서도 흐뭇한 밤을 보냈답니다.
이석의 비둘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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