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하루도 빠짐없이 가요속으로를 듣고 있는 50대 주부 애청자입니다. 이 방송을 들으면서 어쩌면 글들을 잘도 써서 보내는지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저도 못쓰는 글이지만, 35년 전 초등학교 시절에 있었던 추억의 글을 써 볼까 합니다. 유영재께서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그 시절에는 질기고 질긴 검정고무신을 아주 신물나도록 신고 다니던 시절 이였지요. 유영재께서도 혹시 그 검정고무신을 신어 보셨는지요? 옛날 어르신들께서는 다들 아끼면서 살아오셨겠지만, 특히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동네에서도 유별나게 검소하시기로 소문나셨고 대한민국에서도 그런 할아버지는 안계실거라고 보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했었지요. 지금은 비닐로 만든 우산을 보기 드물지만 그 시절에는 비닐로 만든 우산도 많이 사용했지요.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별명이 요술쟁이 할아버지셨거든요. 무엇이든 망가지고 떨어진 것을 할아버지께서 손만 대시면 감쪽같이 새 물건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심지어 비닐우산도 찢어지면 얇은 천을 대서 비가 새지 않게 잘 고쳐 주셨지요. 얼마나 아끼시면서 검소하게 살아오셨는지 모른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제가 자랄 때만 해도 동네에서 조금 잘 사는 집 친구들은 좋은 운동화나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지요. 때는 무더운 여름철 이였죠. 친구가 너무나 예쁜 색깔의 슬리퍼를 신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왜 그렇게 부러워 보이는지 정말 슬리퍼가 너무나 신고 싶었습니다. 무더운 여름철에 이 지겨운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니면 발에 땀이 많이 나고, 또 미끄러워서 잘 벗겨지는데다가 발냄새도 많이 나지요. 두 분께서도 이런 경험이 있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신고 다니던 검정고무신은 여기저기 많이 떨어졌는데 할아버지께서 꿰메어 주시면서 "앞으로도 한참은 신을 것이다" 하시면서 "뛰어 댕기면 빨리 떨어징게 살살 걸어댕겨라"하고 당부하고 또 당부하셨습니다. 저는 이 검정고무신이 너무나도 싫증이 나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께 '날씨가 너무 더웅께 쓰리빠 한 켤레만 사달라'고 졸랐었지요. 왠걸요 우리 할아버지 "너 시방 뭔소리 허냐!"하고 꾸중만 듣고 말았지요. 제가 얼마나 슬리퍼가 신고 싶었으면 어른들 안계실때에는 검정 고무신 뒤꿈치를 뒤집어서 슬리퍼처럼 신고 다녔는데 정말 바람도 잘 통하고 슬리퍼를 신고 있는 기분이 나더라구요. 제 꼴을 보신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신 빨리 떨어지게 왜 고렇게 신고 다니냐'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그때는 제 소원이 시원하게 발에 맞는 슬리퍼를 신어보는 것이 소원이었거든요. 우리집 어른들께는 말씀드려봤자 제 소원도 안 들어줄 것 같고 해서 그 순간 저에게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저희 막내 삼촌께서 군대에서 군 복무중 이셨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아무 것도 모르는 철부지였지요. 군인아저씨가 무슨 돈이 있다고 일단은 군대계신 삼촌께 제 소원이 담긴 편지를 써서 부치고 삼촌께서 휴가 나오시는 날짜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드디어 삼촌께서 제가 신고싶어했던 슬리퍼를 사 가지고 휴가를 나오셔서 제 소원을 들어주셨어요. 저는 기분이 너무 좋아 날아갈 것만 같았지요. "우리 삼촌 최고야!"하면서 이게 꿈은 아니겠지 하고 꼬집어보기도 했지만, 꿈이 아니고 현실이였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제가 그렇게 슬리퍼 사달라고 말씀드릴 때는 호통만 치시더니 한마디 하시더군요. "군인이 뭔 돈이 있다고 군인간 니 삼촌한테까지 편지를 써서 쓰리빠를 사갔고 오라고 혔냐! 이 철없는 것아!" "기왕 사온 것잉게 애껴서 신어라"하고 말씀하시더군요. 우리 삼촌이 할아버지께 하시는 말씀 "아∼따∼ 아브지, 저것이 얼마나 쓰리빠가 신고 싶었으면 군대있는 나한테까지 편지를 썼것소" "쓰리빠 한 켤레가 얼마나 간다고……. 하여튼 우리 아브지는 알아 주셔야 한당게" 그러니까 우리 할아버지께서도 아무 말씀 못하시더라구요. 그런데 그 기쁨도 몇 일 가지 못했습니다. 한 3일정도 지났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제가 그렇게 아끼던 슬리퍼가 보이지 않는거에요. 나중에는 손전등을 가지고 마루 밑에 맨 구석진 곳을 비춰보니, 이게 왠일이래요! 제가 그렇게도 아끼던 슬리퍼가 여기저기 보기 흉하게 물어뜯겨있지 뭐에요. 이건 우리집 강아지 복실이가 한 짓이였죠. 저는 너무나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라 "요놈! 너 잡히기만 하면 가만히 안 놔둔다!!"라고 하면서 복실이를 쫓아가서 잡아왔지요. 그리고 안 죽을 만큼만 두들겨 패대기치니 '깨갱∼∼깽깽∼' 하면서 달아나 버렸답니다. 그 후로 복실이는 자기가 지은 죄를 아는지 저만 보면 살살 피해 다니더군요. 그 일이 있기 전에는 저를 잘 따르는 아주 귀여운 강아지였거든요. 떨어진 그 슬리퍼는 우리 할아버지께서 비슷한 색깔의 천을 대서 예쁘게 꿰매 주셔서 오래도록 신고 다녔지요. 비록 새것 같진 않았지만, 앞뒤가 꼭 막힌 검정 고무신보다 휠씬 시원하고 좋더라구요. 정말 지금 생각하면 잊지 못할 추억의 슬리퍼였지요. 제가 어렸을 때 어른들께서 그렇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서인지 저 또한 생활 습관이 몸에 배어서 검소한 생활을 하게 되더군요. 요즘에도 떨어진 속옷이며 양말까지도 꿰메어 주면 싫은 내색 없이 입어주는 우리 남편과 두 아들에게 고맙기만 하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참!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35년 전 군인 아저씨들은 월급이 얼마나 됐을까요?
조용필의 일편담심민들레야
나 어릴적 무더운 여름날
임명숙
2003.07.22
조회 30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