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때부터 기념일을 챙긴다거나 남에게 선물을 주는 일에 익숙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나서인지
아직까지도 남에게 선물을 해본 기억이 없다.
거기에다가 사람들이 왜 선물을 주고받는지 이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삭막한 상태였으니
내 삶도 건조한 날의 연속이 되고 말았다.
가끔 직장에서 남들이 선물을 줘야 한다고 고민하거나,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광경을 보면 ‘애들 장난이네’하고 치부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아내를 만나면서부터 나는 ‘선물공세’에 시달리게 되었다.
마른 오징어 위에 장미꽃을 첨부한 이상한 꽃다발을 시작으로,
아내는 생일은 당연지사이고 어떤 명목을 붙이면서 내게 선물을 주었다.
그런데 그 선물이라는 것이 묘했다.
별것 아닌 물건 하나에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 마력.
나는 서서히 그 마력을 즐기게 되었다.
그런데 그 마력을 줄곧 즐기면서도
내가 남에게 그 마력을 즐기게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의 씀씀이 습관이 항상 발목을 잡아서였다.
나는 선물에 드는 비용으로 뭘 할 수 있고,
저축을 얼마 더 할 수 있다는 식으로 계산하며 여전히 인색한 삶을 살았다.
아내는 결혼 후에도 내게 선물을 주었다.
나는 그 선물들이 내가 번 돈을 아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조금씩 벌어서 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에 대한 답례를 하지 않았다.
그저 남편이라는 위치에서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10년 세월을 지내고 나니,
서서히 선물을 받기만 하지 말고 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얼마 전에 아내는 내게 전자사전을 선물해주었다.
회화까지 발음되는 사전을 탐낸 나를 배려하여 거금을 투자한 선물이었다.
전자사전은 내가 원한 기능이 모두 들어 있는 맘에 드는 제품이었고,
나는 답례를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은근히 아내의 심중을 살폈다.
마침 인근 도시에서 열리는 조용필 콘서트의 안내 방송이 텔레비전에 자주 나왔다.
그때마다 아내가 눈은 반짝이며 입장권 판매처를 읽어 내려가는 것을 보고 나는
‘아하! 바로 저거야’
하면서 무릎을 쳤다.
나는 큰맘 먹고 내 용돈의 절반을 털어 콘서트 입장권 두 매를 구입했다.
아내는 목이 터져라 노래를 따라 부르고, 손바닥이 아프도록 손뼉을 치면서 콘서트를 관람했다.
나는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동안 공연장이나 문화행사를 전혀 데려가지 않은 자신을 책망해야 했다.
콘서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들러 저녁을 먹었다.
덕분에 그날 이후 아내는 늘 기쁜 표정으로 노래를 불렀고,
나는 내가 처음으로 한 선물의 위력을 알게 되었다.
유영재님!
이번에도 아내에게 그런 기쁨을 주고 싶은데
어떻게 안될까요 ?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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