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병원에서 지내다
최미란
2003.08.01
조회 66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여름 휴가 때는 언제나 제 고향인 남원으로 갑니다.
오남매가 모두 휴가일을 맞추어 모이면 조용하기만 하던 고향집은 시끌법석 사람 사는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부모님과 오남매의 짝들, 그의 분신들
합하여 열아홉.
식사 시간이 되면 일진 이진 나누어 먹게 되고 그 설겆이도 만만치 않지만 나이 드신 엄마는 싱글벙글 힘든줄도 모르시고
음식 한가지라도 더 해 주고 싶어 연신 이마에 땀을 훔쳐 내시곤 합니다.
우리들 모두 나이가 들어 한 가정을 이루고 있지만 부모님 앞에만 서면 아이가 되고 말아 어리광도 부리고 투정도 부리고 하며 3박 4일의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오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여름은 갑작스런 아버지의 입원으로 인하여 우리들은 병원에서 휴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모두 모이기로 한 그날 아침 아버지께서는 배가 아프신데도 곧 나아지려니 하고 참고 계셨나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통증은 더 심해져
마침 일찍 도착한 막내 동생이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응급실로 가신 아버지의 병명은 담낭에 염증이 있어 입원을 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한번도 아파서 누워 보신적이 없었던 건강한 분이셨으므로 우리들은 너무도 놀랐지만 애써 태연한 척 했습니다.
그날 밤 아버지는 입원실로 옮기셨고 우리들은 아버지 병실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형제들이 많으니 참 좋더군요.
큰 아들 작은 아들 막내 아들, 큰 사위 작은 사위 돌아가며
아버지 팔 다리 주물러 드리며 옆에서 수발을 거드는 모습이 어찌나 보기 좋은지...
병실에 누워 계시는 내내 아버지는
" 일년만에 온 휴가인데 나때문에 다 망쳤구나" 하시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다행이예요.
우리들이 모두 이렇게 휴가 받은 날 아버지를 간호할 수 있다는 것이.
비록 아버지가 아프셔서 입원은 하셨지만
형제들이 효도할 수 있는 시간을 맘껏 주심에 감사 드렸습니다.
우리는 농담처럼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자식 사랑이 애틋하셔서 아프시는 것 조차도 자식들 따로 시간 내서 내려 오지 않도록 휴가 맞추어 아프시네요."
일주일 입원하고 퇴원하셔서 에전의 건강을 되찾으셨지만
아버지는 지금도 휴가를 당신땜에 망쳤다고 미안해 하십니다.
"아버지, 작년 휴가 망치지 않았어요.
오랫동안 아버지 곁에 있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아버지, 건강하시고 오래 오래 사세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올 휴가도 우리 가족은 남원으로 갑니다.
춘향의 정절이 살아있고 지리산의 정기가 넘치는 그 곳 남원.
지금쯤 고향집 마당엔 봉선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우리 엄마는 딸과 손녀의 손톱에 붉게 봉숭아 물을 들여줄 생각에 꽃을 바라보며 날짜만 손꼽고 계실겁니다.
담장 너머로 접시꽃과 해바라기도 고개를 내밀고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겠지요.
고향집이 그립습니다.
늙으신 어머니, 아버지가 보고 싶습니다.

신청곡은
임성훈은 시골길.

사실은 오늘 이웃들과 안면도로 놀러 갑니다.
글쎄 휴가라고 해야 할지.....
가끔 시간이 나면 놀러 가는 여행이구요.
나의 휴가는 고향집 가는겁니다.
숙제 안하고 그냥 떠날려고 하니 영 마음이 찜찜해서 몇자 적고 갑니다.
아마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이 방송을 듣겠지요.
네시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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