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2월쯤으로 기억 되어집니다.
국회의원 선거가 있던 해 였습니다.
주소가 안양에 있었고 저는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살았었죠?
친정 나들이도 할겸 선거도 하려고 친정인 안양에 왔죠?
모처럼 어렵게 올라온 친정나들이라 늦도록 친구들도 만나고
은사님도 뵙고 신나게 돌아다녔지요.
그러던 어느날, 그날도 고등학교 동창생을 만나고
집에오는데(밤8시 30분경) 누군가가 계속 쫓어 오더라고요.
처음엔 같은 방향에 사는 어떤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라
강도 였지요.어떻게 해서든 골목길을 벗어나야겠기에
죽도록 달렸지요.머리는 하늘로 솟고 등줄기는 싸늘하고
걸음은 걸려지지 않고.그순간 하나님은 백번도 더 불렀고
제발 제발 ...
골목길을 다벗어나자 약국과 쌀집이 보이데요.이젠 살았구나 했는데... 순간 별이 반짝 빛나더니 어깨에서 핸드백이 스르르 흘러내리더니만 없어지는것 있죠.
그리고 정신을 차린곳이 병원,
집짓는벽돌로 내머리를 내리쳤는가 봅니다.
양쪽 머리가 갈라져 한쪽에20바늘씩40바늘을 꿰매고
서울 성심병원에가서 머리 촬영하고,3달을 병원 생활했지요.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병원은 더 심한 강도 였다는것,
무기만 없었지 날강도더라고요.
병원비가 상상을 초월할만큼 나온거지요.
그때 결혼하고 얼마 안돼서 의료보험증이 없었거든요.
병원 시설도 좋지않았고 병실에 설치해논 연탄난로는
까스냄새가 심했고 약물치료도 별로 없었는데..그렇다고 뇌수술 받은것도 아니고, 병원비때문에 싸움이 시작되고 갖은 욕설과
멸시속에서 방법을 찾았죠.
청와대 민원실로 민원을 재기 한거죠.
10장의 글을 써서 보낸지 2주 정도 되니까 안양시 보건소 소장과 아마도 청와대 쪽에서 나온듯한 사람이 병원을 조사 하게 되었죠. 저의 챠트와 X-RAY 사진 약물치료등 모두 압수하여
조사한결과 75만원의 병원비면 될것을 그것의 10배를 받으려 했다는 거였죠?
그렇게 해서 저의 병원생활은 끝이 났지요.
원래는 1달정도면 충분했었는데 병원비 때문에 3달씩이나
있었던 거죠.
그때의 그공포와 의사의 험상궂은 얼굴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 합니다.
또한 억울한일 있으면 청와대 민원실 애용해보세요.
잘처리 해 주더군요. 지금도 가능한지 모르지만...
아이고 그때 골로갔으면 유가속도 못들을뻔 했네요.
잘생긴 피디님도 못보고 영재님도 못보고 캠프도 못갈뻔 했네요.살았다는 것은 참 좋은거군요.
아참 그강도요? 못 잡았구요.핸드백과 민증은 찾았어요
그때 핸드백엔 3만원 밖에 없었어요
그강도 억세게 재수없어지요.
잡히지 않았으니까 재수가 좋은건가?
최대의 사건 최악의 여건(두발통)
에어콘
2003.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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